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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밥풀》에서 풍기는 삶의 냄새

이상호 | 입력 : 2024/02/04 [20:51]

▲ 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대표, 소소감리더십연구소소장)   ©뉴스파고

 

[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대표, 소소감리더십연구소소장] 2024년 새해가 밝아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빠르다고 느끼면 늙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도 늙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전에 없이 객지에 있는 아들의 끼니가 자주 걱정된다. 혹여 통화를 하면 우선 하는 말이 “밥 먹었냐?”이다. 그렇게 내가 아들에 대한 인사말에 밥이 등장하는 것은 오래전 내 곁을 떠난 어머니의 말과 같다. 어머니도 세월이 흐르면서 나에게 밥을 늘 걱정했다. 밥은 생존에 있어서, 부모가 홀로 있는 자식을 걱정함에 있어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우린 밥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밥에 관한 시를 읽는다.

 

 

《밥풀》

 

오늘 밥풀은 수저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풀은 그릇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그릇엔 초저녁 별을 빠뜨린 듯


먹어도 먹어도 비워지지 않는 환한 밥풀이 하나 있네


밥을 앞에 놓은 마음이 누룽지처럼 눌러앉네


떨그럭떨그럭 간장종지만 한 슬픔이 울고 또 우네


수저에 머물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이 저녁의 어둠


이 저녁의 아픈 모서리에 밥풀이 하나 있네


눈물처럼 마르고 싶은 밥풀이 하나 있네


가슴을 문지르다 문지르다 마른 밥풀이 하나 있네


저 혼자 울다 웅크린 밥풀이 하나 있네


 

-이기인(1967)의 밥풀》 전문-

 

퇴직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홀로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밥을 먹는 내내 주위를 힐긋힐긋 둘러보았다. 홀로 밥을 먹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 듯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이었다. 식당을 나올 때 보니 아무도 나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홀로 먹는 밥은 그렇게 어색한 것이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1인 가족이 늘고, 독거노인이 늘고 독거청년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홀로 밥을 먹는 사람을 자주 본다. 별로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어쩌면 상당한 수준의 문화적 대세인 것 같다. 그러나 시에서 느끼는 혼밥은 차원이 다르다.

 

시에서 화자는 숱한 날을 홀로 밥을 먹어 왔다. 그런데 오늘 먹는 밥의 밥풀은 수저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그릇에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유독 오늘은 삶이 헛헛해진 모양이다. 우리는 밥을 먹을 때마다 밥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간혹 어떤 계기와 분위기가 주어지면 자신을 돌아보고 밥을 먹으며 삶의 서정에 빠진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어쩐지 오늘 먹는 밥은 맛이 없고 목구멍으로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분명 무엇인가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은 무엇일까? 외로운 것이다. 슬픈 것이다. 간혹 사람들은 생각 없이 평온하게 지내다가도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할 때 슬픔과 고독에 빠지기도 한다. 누군가 함께 밥을 먹어줄 사람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럴 사람이 없다. 그러니 배가 고파 혹은 때가 되어 살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꾸역꾸역 밥을 입속으로 집어넣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밥을 다 먹었다. 하지만 밥그릇 구석에 밥풀이 붙어 있다. 숟가락으로 젓가락으로 집어 보지만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질긴 인연이며 질진 생명력이다. 꼭 자신과 같다. 홀로 밥을 먹는 자신의 생명력도 그처럼 질긴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은 그 밥그릇에 “초저녁 별을 빠뜨린 듯/먹어도 먹어도 비워지지 않는 환한 밥풀이 하나 있”다. 초저녁 별처럼 환한 밥풀, 그것은 외로운 삶에 피어나는 희망이고 꿈이다. 그래도 그것이 있기에 밥을 먹는다. 비록 혼밥을 하고 있지만 밥은 생명 연장을 위한 일만 아니라 꿈과 희망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객지로 간 아들, 딸이 올 날을 기다리는 홀어머니의 소망이 있고, 고시원에서 홀로 저녁을 먹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청년이 있다. 그래서 슬픔을 안고서라도 “밥을 앞에 놓은 마음이 누룽지처럼 눌러앉게” 된다. 그래도 혼밥은 슬프다. 그러기에 ‘간장종지만 한 슬픔’이 울고 또 운다. 그러면서 “수저에 머물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이 저녁의 어둠”처럼 슬픔을 삼키고 삼킨다. 슬픔이 여러 갈래로 교차되고 있다. 절망과 체념이 연속된다. 그러면서도 또 희망한다. 이유는 살기 위함이다. 그래도 지향하는 실낱같은 꿈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여전히 밥풀은 남아 있다.

 

밥풀은 구석진 모서리에서 아픈 저녁을 맞이하는 사람이다. 그 혼밥을 하는 사람은 눈물이 마르듯 그저 마르고 싶다. 그것은 슬픔과 외로움을 스스로 삼키고 이기고 싶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의지가 있는 사람이지만 그는 여전히 외로움과 슬픔으로 가슴을 문지르고 혼자 웅크리고 있다. 밥풀은 혼밥을 하고 있는 외롭고 슬픈 사람들이다.

 

혼밥을 하면서 슬픔과 외로움을 이겨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자식이 있지만 모두 객지에 나가 있고 노구(老軀)를 움직이며 저녁밥을 먹는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피붙이조차 없어 홀로 밥을 초라한 밥상을 차리는 독거노인, 가난한 쪽방 사람들, 객지에서 아직 삶의 길을 열지 못하고 고통과 고뇌의 날을 견디며 한겨울 추위 속에 빵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청년들, 가족을 위해 객지의 일터에서 홀로 지내며 고단한 몸을 달래며 가족이 그리워 밥알에 눈물을 삼키는 사람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줄어야 하는데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밥이 남아 넘치는 세상이다. 쌀이 남아 정치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뷔페식당에 가면 버리는 밥이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은 하늘이다. 그 하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어쩌면 가난한 사람들과 삶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사람들이 아닐까? 삶의 공감대 그것은 “돌봄”의 공감 영역이다.

 

이제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돌봄은 단순한 가족과 사회의 문제가 아닌 고도 문명사회에서 고도로 소외되어 가는 인간 군상들을 위한 주요한 국가의 정책이 되어야 하는 때가 되었다. 어쩌면 이기인의 시 《밥풀》은 작자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나에게는 점점 소외가 심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공동체로서 우리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를 던져 주는 것 같다. 이제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은 혼밥하는 사람들의 슬픈 저녁 《밥풀》의 의미를 깨닫고 총체적인 돌봄을 향한 마음의 공감대를 형성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외로운 《밥풀》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바란다. 혼밥의 《밥풀》이 길어지면 안 된다. 어쩌면 오늘 저녁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타인의 슬픔과 외로움에 대해 공감하고 걱정하는 마음 공동체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국가사회의 돌봄 정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감하는 마음 공동체의 회복이 아닐까?

 

혼밥하는 사람들, 그릇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니 않는 외롭고 슬픈 《밥풀》이 없는 환한 세상이 오길 바란다. 《밥풀》에서 삶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풍요의 문명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에겐, 외롭고 슬픈 사람들에겐 밥이 하늘이다. 하늘인 밥을 소중하게 여기자. 《밥풀》 한 톨에 담긴 삶의 냄새를 진하게 맡아 보자. 혼밥하는 사람들이여, 오늘 저녁엔 슬픔의 눈물이 마르도록 환한 초저녁 별을 생각하자.

 

*** 참고 사항 : 이기인 시인에 대하여****

 

1967년 인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방직공장의 소녀들》이 당선되어 등단(2000년). 시집으로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창작과비평사, 2005), 『어깨위로 떨어지는 편지』(창작과 비평사, 2010), 『혼자인 걸 못 견디죠』(창작과 비평사 2019)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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