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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황혼》아. 내 그대를 통해 위안받으리니

이상호 소장 | 입력 : 2024/02/14 [09:02]

▲ 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소소감리더십연구소장)     ©뉴스파고

 

 

1. 비록 횡액의 인간사 일지라도

 

“야속하지마는 불유쾌한 결과가 누구나 그 신변에 일어났을 때 이것을 횡액(橫厄)이라고 하여 될 수만 있으면 이것을 피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러한 횡액의 연속선(連續線)을 저도 모르게 방황하는 것은 사실은 한평생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배를 타다가 물에 빠져서 죽었는가 하면, 소나기를 피하여 빈집을 찾아들었다가 압사(壓死)를 당한 걸인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것들은 대개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것이며, 심하면 제 집사람에게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땐 무슨 수를 꾸며서라도 그 주위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기 존재를 살리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꼭 알맞은 정도의 결과를 가져온다면 여러 말을 할 때가 아니로되, 때로는 그 효과가 너무 미약하여 이렇다 할 만큼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땐 너무나 중대한 결과가 실로 횡액이 되고 말 때가 많다.”

 

위의 글은 1939년에 발간된 《文章》(10월호)에 실린 이육사의 산문 <橫厄(횡액)>의 한 대목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사는 모두 <橫厄(횡액)>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횡액을 겪으며 지나고 나면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믿었건만 또 <橫厄(횡액)>이 닥쳐온다. 그러면 우린 또 그 <橫厄(횡액)>과 맞서 싸워 이겨내야 한다.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죽음이요 파멸이다.

 

조선 선조 때 우린 처참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었다. 전국이 초토화되고 국민의 삶은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졌다. 엄청난 횡액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30년 정도 지난 후 병자호란이라는 처참한 병란을 또 겪게 되었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를 제거하면 일제의 그 음흉한 야욕이 사그라질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1909년 1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성이 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했지만, 일제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 빠르게 조선 병합 작업을 진행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그 장렬한 쾌거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으며 자주독립을 향한 간절한 소망을 지닌 것임을 세계만방에 고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늘 자국의 이해득실로 움직이는 국제 정세는 일본의 만행을 크게 비난하지 않았다. 그리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조선은 일본에 병합되었다. 그것 또한 횡액이었다.

 

한국의 현대사를 돌이켜 볼 때 우리 역사는 크나큰 횡액의 역사를 안고 있다. 일제의 잔혹한 지배 하에서 우린 일제가 망하고 해방만 되면 자유로운 나라를 건설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소련이 김일성을 앞세워 한반도의 북쪽에 인민 정부를 세우면서 다급해진 남쪽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자유 정부를 세우기에 바빴고 해방정국은 좌우의 대립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1950년 스탈린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기습 남침을 감행해 와 겪은 6.25 전쟁으로 전국이 초토화되고 수많은 동포가 죽었으며 남북은 더 깊은 적대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과정도 그렇다. 3.15 부정선거만 타도하면 올곧은 민주 정부를 수립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정국은 더욱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으며 결국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의 봉기를 겪게 되었다. 군부의 힘으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은 초기에는 조국 근대화라는 기치 아래 빛나는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으나 장기 집권을 위한 유신 헌법을 선포하였고 결국은 장기 집권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그때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유신 타도를 외쳤을 때는 박정희의 유신 정권만 무너지면 올곧은 민주 정부를 수립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우린 ‘80년대의 봄’을 맞이하면서 그 소망은 정치적 야망에 굶주린 신군부에 의해 송두리째 무너졌다. 그리고 저수지의 둑이 한꺼번에 무너져 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정치적 이념과 이해관계에 얽히고  설켜 무질서에 가까운 혼란도 초래했다. 독재 치하에서 독재를 타도하기만 하면 자유와 평화가 올 줄 알지만, 독재 없는 공간에는 욕망의 충돌이 난무하여 오히려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중동지역에서 불었던 ‘아랍의 봄’도 혼란 속에서 다시금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회액을 극복하고 딛고 서는 지혜에 있다.

 

우리는 지난한 민주화 운동의 길을 걸으며 오늘의 민주주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던 촛불론자들은 촛불정신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이며 나아갈 길이라고 했지만, 그 촛불 세력에 의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그들 스스로 촛불의 자아도취에 빠져 굶주린 이리처럼 권력의 달콤한 맛에 취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한국 민주주의는 아직 질곡의 길을 걷고 있다.

 

2020년부터 우린 코로나19라는 지독한 횡액을 경험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한 자연적으로 발생한 횡액이었는지 모른다. 그때 우린 ‘코로나19’만 벗어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통제된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물러간 지금은 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지난 정부에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수많은 서민과 청년들이 절망하게 했다. 그때 우린 집값이 내리면 뭔가 해결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것 또한 오산이었다. 오른 집값이 내리는 것도 문제였다. 거기다가 국제 정세는 날이 갈수록 철저한 국가 이기주의로 바뀌어 가고 있다. 거기다가 북한 김정은은 연일 핵 위협을 가하여 오고 있다. 이런 역사적 일들 또한 <橫厄(횡액)>이 반복되는 인간사이다.

 

국가나 사회뿐 아니라 개인의 삶 또한 그와 맞물려 돌아가는 횡액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그것은 좋은 날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폭풍우가 닥치는 것과 같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횡액은 인간이 자초한 것들도 많지만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한 자연적인 것들도 많다. 여기서 인간이 살아남으면서 삶을 개척하고 문명을 발전시키며 또 다른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그 횡액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는 삶의 의지와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횡액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거기에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기가 자기에게 하는 위로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위로의 힘에는 꿈과 희망이 깃들여 있다.

 

시인이요 독립운동가였던 이육사의 시 《황혼》을 읽으며 횡액이 반복되는 인간사에서도 스스로 위로하면서 꿈을 잃지 않고 삶의 의지를 다지는 사람들의 저항 의식을 느낀다. 이때 위로는 스스로 치유하면서 저항 의식을 강화하는 심리적 기제이기도 하다.

 

 

2. 《황혼》을 위안 삼아

 

내 골ㅅ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黃昏을 맞아드리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 같이도

人間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黃昏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十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鐘ㅅ소리 저문 森林속 그윽한 修女들에게도

쎄멘트 장판우 그 많은 囚人들에게도

의지 가지없는 그들의 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沙漠을 걸어가는 駱駝탄 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 綠陰속 활 쏘는 土人들에게라도

黃昏아 네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地球의 半 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五月의 골ㅅ방이 아득도 하니

黃昏아 내일도 또 저-푸른 커-텐을 걷게 하겠지

 

-이육사 《황혼》 전문-

 

이 시는 이육사의 처녀작으로 30세였던 1933년에 『新朝鮮(신조선)』지에 발표된 시다. 이육사는 이 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육사는 이 시를 통해 일제의 잔혹한 현실 앞에서 자기의 길을 다짐하는 꿈과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낸 것으로 이해된다.

 

이 시를 쓸 때까지의 이육사의 삶을 돌아보자.(이동영 편저, 『이육사』, 문학세계사, 1992 참조) 1923년 20세의 이육사는 대구 남산동 662번지로 이사를 한다. 그리고 그해 일본으로 건너가 약 1년간 있다가 돌아왔다. 그의 일본 수학과 생활을 재정적으로 도운 이들은 약업에 종사하였던 김관제(金觀濟) 삼강병원 원장이었던 김현경(金顯敬), 당시 경상북도청에 근무하였던 강신묵(姜信黙) 등이었다.

 

1925년 22세 때 백형인 원기(源祺), 숙제(叔弟)인 원일(源一)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正義府), 군정서(軍政署)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26년(23세) 대구 조양회관(朝陽會館)에 나가며 신문화 강좌에 참여하다가 이정기(李定基)와 함께 북경에 갔다. 그리고 이듬해인 1927년(24세)에 귀국하였다. 그해 가을 장진홍(張鎭弘, 1895~1930,독립운동가. 일명 성욱(聖旭). 경상북도 칠곡 출신)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 사건에 피의자로 지목되어 원기, 원조와 함께 검거되었다. 원조는 재학생이어서 석방되고 육사를 포함한 3형제는 2년 7개월간 감옥 생활을 하다가 1929년(26세)에 장진홍이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 사건의 주범으로 검거되자 3형제는 석방되었다. 육사는 석방되자 「조선일보」 대구 지사를 경영하며 기자로 활동하다가 그해 10월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예비 검속되었다.

 

1930년(27세) 11월에 대구에서 격문사건(檄文事件)이 있었다. 육사는 원일과 함께 이 사건에 피검되어 수감 되었는데 원일은 2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나오고 육사는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1931년(28세)에는 외숙인 일헌 허규의 독립군 자금 모금에 참여하여 만주에 갔다가 군관학교 학생 모집을 위해 귀국하였으며, 영천 출신 김모씨, 원일 등 3명을 데리고 북경으로 가는 도중 만주 사변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네 사람은 약 3개월 만에 돌아왔다. 이때 육사는 봉천(奉天) 김두봉(金枓奉)의 집에 가 지내게 되었다. 1932년(29세)에는 북경에 가 있다가 10월 22일 조선 군관학교(당시 교장 김원봉) 국민 정부 간부 훈련반에 입교하여 1933년(30세)에 4월 22일 조선군관학교 제1기생으로 졸업하고 7월 14일(10월 14일이라고도 함) 상해를 거쳐 신의주를 통해 귀국하였다. 돌아온 육사는 『新朝鮮(신조선)』 지에 시 《황혼》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필활동을 시작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육사가 이 시를 쓰기 전에 이미 장진홍 사건 때 2년 7개월, 대구 격문 사건 때 6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광주학생사건 등 여러 사건 때마다 예비검속되었다. 이때마다 이육사는 절망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는 길에 항상 횡액이 도사리고 있다고 여겼을 것이며 그 횡액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과제로 여겼을 것이다. 위의 시 《황혼》은 이육사가 이전의 감옥 생활을 떠 올리며 쓴 시로 추정된다. 이 시에는 꺾이지 않는 의지와 꿈이 서려 있다.

 

시는 총 5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연의 ‘내 골방’은 홀로 있는 골방일 수도 있겠으나 3연에 나오는 수인(囚人)으로 보아 감옥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육사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얼마나 답답했을까?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해질무렵 커-텐을 열어젖히니 황혼이 다가왔다. 육사는 그 황혼을 정성된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상상에 젖는다. 바다를 나는 흰 갈매기들은 저마다 끼룩거리지만, 각자는 외로운 존재들, 인간 또한 외로운 존재다. 홀로 골방에 갇혔으니 외롭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족도 일제의 감금하에 있으니 갈매기처럼 많은 존재지만 개별적으로는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인은 거기에 연연하여 절망하지 않는다. 황혼을 통해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보낸다.

그래서 황혼에게 부탁한다. “黃昏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너에게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황혼은 사랑의 대상이요. 희망이다. 어쩌면 일제의 폭압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연상했다고 하면 비약일까? 육사는 황혼을 절망의 빛이 아닌 희망의 빛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육사의 상상적 사유는 “저- 十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처럼 우주로 통하였다가 다시 “鐘ㅅ소리 저문 森林속 그윽한 修女들에게도”처럼 인간 세상의 고독한 수행자에게로 통한다. 그리고 다시 차디찬 감옥에 갇힌 ‘쎄멘트 장판우 그 많은 수인(囚人)’에게로 통한다. 그런데 그들의 심장이 떨고 있다. 왜냐하면 의지할 가지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十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은 이육사가 그의 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에서 말했듯이 하늘에 떠 있는 숱한 별들이다. 불특정 다수의 별들, 그것은 단순한 우주의 현상이다. 육사가 바라는 별은 “十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인 “그 숱한 별들”이 아닌 ‘아침이나 저녁, 언제나 볼 수 있고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아주 친한 별’이다. “아름다운 미래를 꾸며 볼 동방(東方)의 큰 별”이다. 육사는 황혼을 보며 황혼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들 모두(十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 森林속 그윽한 修女들, ‘쎄멘트 장판우 그 많은 수인) 에게 내밀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삼천리 강산 그리고 우리 동포 모두를 향한 마음이 아닐까?

 

그리고 육사의 그러한 마음은 세계의 구석진 곳곳 즉 “고비沙漠을 걸어가는 駱駝탄 行商隊” “아프리카 綠陰속 활 쏘는 土人들”에게까지 향한다. 그리하여 황혼, 그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만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이라도 타는 입술에 맡겨 달라고 부탁한다. 강렬한 언어의 욕망이 용솟음친다. 세상을 향해 우주를 향해 끓어오르는 마음을 토해 내고 싶다.

 

그러나 아직 “내 五月의 골ㅅ방이 아득도 하니” 마음대로 밖으로 나가 황혼을 맞이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다만 내일도 모래도 저 푸른 커-텐이 걷히기만을 기다린다. 푸른 커-텐은 황혼을 맞이하게 해 주는 문이다. 그리고 황혼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五月의 골ㅅ방”에 처박힌 시인의 꿈이요 희망이며 보드라운 살갗이다. 시인은 황혼을 통해 절망에 갇힌 자신의 꿈과 의지를 상상하며 다지고 있다. 그래서 푸른 커-텐이 젖혀진 황혼의 저녁은 한없는 위안이요.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이다.

 

황혼이 지나고 나면 별이 뜬다. 육사가 바라는 별은 하늘에 뜬 뭇별들이 아니다. 그가 보고 싶은 별은 “아름다운 미래를 꾸며 볼 동방(東方)의 큰 별”이다. 황혼은 우리를 별의 세계로 이끈다. 별은 황혼이 데려오는 신비요 희망이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육사의 마음을 열어주고 꿈을 이끌어 준 「은하수」였을 수 있다. 그러나 육사는 은하수를 잃어버렸다. 육사는 “영창을 열고 보면 하늘에는 무서리가 내리고 삼대성이 은하수를 막 건널 때 먼데 닭 우는 소리가 어지러이 들리곤 했다. 이렇게 나의 소년 시절의 정들인 그 은하수였건마는 오늘날 내 슬픔만이 헛되이 장성하는 동안에 나는 그만 그 사랑하는 나의 은하수를 잃어버렸다. (「은하수」 1940년 농업조선 10월호)”고 말한다. 어쩌면 이육사는 그 잃어버린 은하수를 찾기 위해 평생을 저항하고 고뇌하며 외쳤는지 모른다. 이렇게 보면 《황혼》에서부터 《광야》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온갖 횡액을 겪으면서도 고통을 희망으로 이겨내고자 한 선열의 뜻이 보인다.

 

 

3. 황혼을 향해 푸른 커텐을 걷자

 

《황혼》은 위로의 향연이다. 우리는 황혼을 하루의 종식, 혹은 끝과 절망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황혼은 하루를 마감하는 찬란한 시간이며 그 찬란함을 아름답게 수놓은 풍경이다. 우리는 그 황혼의 시간 황혼을 바라보며 지나간 하루를 반추하고 위로하며 새로운 다짐을 한다. 그 다짐은 자기가 자기에게 하는 따뜻한 위로를 통해 에너지가 충전된다. 그래서 위로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위로가 있기에 절망에서 자신을 다시 잡을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따라서 우린 늘 황혼을 대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린 하루가 마감될 때마다 그리고 역경이 닥칠 때마다 역경을 헤치고 지나갈 때마다 자기 위로가 필요하다. 그 위로는 꿈과 희망의 내일을 향한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또 《황혼》은 하루의 반복이다. 그것은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 1908~2009, 벨기에 브뤼셀 출생의 프랑스 철학자, 인류학자.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 의 말이다. 레비스트로는 “황혼은 시작과 중간과 끝이 완전하게 재현되는 것이며 그 광경은 열두 시간 동안의 전투와 승리, 그리고 패배가 연이었던 것을 축소시킨 일종의 그림을 명백하면서도 느릿느릿한 방법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벽은 하루의 시작에 지나지 않지만 황혼은 하루의 반복인 것이다.(슬픈 열대)”고 하였다.

 

하루라는 시간은 온갖 삶의 전투가 벌어지는 시간이다. 거기엔 승리와 패배, 환호와 좌절이 숨 쉰다. 황혼은 그 모든 것을 성찰하고 품기에 하루의 반복이 된다. 그리고 내일이란 또 다른 하루로 향하는 관문이다. 황혼을 잘 정리한 사람은 내일도 힘차게 맞이할 수 있다. 이육사의 황혼은 그런 하루의 반복이며 내일을 향한 희망이다.

 

또 《황혼》은 저항 의식의 서곡이다. 승리와 패배, 환호와 절망이 교차되는 하루라는 전투의 시간에는 닥치는 역경에 대한 저항 의식은 필수이다. 그 저항 의식이 있기에 견뎌내고 승리를 만들어 내며 절망 가운데서도 힘차게 싸운다. 저항 의식은 승리와 환호를 향한 횟불이다. 그런 점에서 《황혼》은 저항 의식의 서곡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저항 의식과 행동은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어쩌면 저항 의식이 있기에 자신을 지키고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그 저항 의식은 굳이 부조리한 세상과 행위에 대한 저항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삶의 순간순간 닥쳐오는 온갖 횡액에 대처하면서 이겨내는 힘이다. 우리는 황혼을 통해 그런 삶을 의지와 희망이 깃든 저항 의식을 발견한다. 그래서 황혼은 저항 의식의 씨앗이요 에너지다.

 

이육사가 일제 치하의 암울한 현실, 감옥에 갇혀 자유를 상실한 몸, 그래도 힘든 하루를 견디며 대견스럽게도 자신을 지켜 온 것은 그런 불합리와 역경을 이겨내는 저항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해방이란 자유공간을 향한 꿈과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항 의식은 삶을 삶답게 이끌어 주는 힘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저항의 비밀은 희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저항은 오로지 희망이다(R.샤르)”는 말은 유효하다.

 

지금도 우리는 온갖 횡액을 겪으면서 절망에 빠지고 그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지금은 일제와 같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가 깃든 해방공간이라지만, 항상 우리를 덮쳐오는 불안과 역경은 반복된다. 서두에서 말했지만, 역사는 개인의 역사건, 사회의 역사건, 국가의 역사건, 인류의 역사건 횡액이 반복된다. 그 횡액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음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로는 역경에 대한 저항을 발휘한 자기에 대한 칭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위로와 저항 의식을 이끄는 힘은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이다. 이육사는 황혼을 통해 그것을 발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오늘을 사는 우리도 매일 반복되는 황혼을 바라보자. 그리고 이렇게 외쳐보자. “《황혼》아. 내 그대를 통해 위안받으리니 나에게 꿈과 희망의 에너지를 다오” 그리하여 그 황혼을 통해 자기 위로와 격려와 역경에 대한 저항 의식과 꿈과 희망의 에너지를 발견하고 축적하자. 황혼을 향해 푸른 커-텐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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