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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이 불꽃으로 피어나길

이상호 | 입력 : 2019/11/19 [13:54]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얼마 전 서울에서 한 시민사회단체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고(故) 김용균 재단 이사장인 김미숙 씨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김용균 재단은 고 김용균 씨가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전설비를 점검하다가 사고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출범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아들 김용균을 잃은 슬픔을 억제하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자기 아들 같은 청년들뿐 아니라 이 땅의 노동 약자들이 위험의 외주화에 내몰리지 않고, 산업재해가 없는 안전하고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어 모두가 동등하게 대접받으며 노동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함께 해 달라고 했습니다.

 

김 이사장의 음성은 나에게 강한 떨림으로 다가오면서 위험한 작업장에서 숨져간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그리고 위험의 외주화를 고발한 시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이 떠 올랐습니다. 시가 길지만, 전문을 옮겨 봅니다.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   - 김경주- 

 

1 내가 용광로에 빠진 날 

내 몸은 사라졌어 

뜨거운 쇳물에 모두 녹아버렸지 

뼈 한 조각 남지 않았지 물론 

내 이름도 남지 않았지 물론 

너는 내 이름도 기억 못하겠지만 

가슴이 아파, 어머니께 머리카락 한 가닥 손가락 한 마디 

남기지 못했으니까.

내 잘못은 이 세상에 나와 발을 헛딛었을 뿐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이 되어버렸지 

 

2 나는 너무 뜨거워서 이제 눈사람이 되었어. 

내 몸은 다 녹아 내려서 

당신의 밥 먹는 숟가락이 되었을까. 

내가 일하던 공장은 철강공장 

나는 당신 집의 젓가락이 되었을까. 

내가 일하던 공장은 하얀 연기 하늘로 올라가는 철강공장 

내 잘못은 이 세상에 나와 발을 헛딛었을 뿐. 

내 심장의 용광로는 식어 버렸어. 

 

3 꿈속에서 어머니 나는 내 손가락들을 세어봐요 

당신이 내가 태어난 날 세어보던 그 손가락들을 

나는 뼈까지 다 녹아서 사라졌으니까요. 

어머니 당신과 함께 한 번만 더 숟가락을 쥐고 밥을 먹고 싶어 

꿈속에서 너무 무서운데 공장에 출근하는 꿈을 꿔 

꿈속에서 기계들이 눈사람들을 쇳물에 빠뜨리고 있어 

눈사람은 쇳물로 들어가서 철강 제품이 되어 나와. 

새벽에 일어나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는 그 사람들은 

사람이 녹아 있는 그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국을 떠먹지. 

어머니 당신의 용광로에서 나온 사람은

이제 숟가락이 되어 차갑게 부엌에서 뒤집어져 있어. 

누군가의 밥에 닿아 누군가의 눈물을 닿아 

조금씩 나는 다시 녹아내릴 테니까. 

나는 조금씩 발을 헛딛었을 테니까. 

-<김경주외 3인 『일인시위』, 아트포스, 2018>에서- 

 

2010년 9월 7일 새벽 2시 충남 논산의 한 철강공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전국에서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인터넷에 올랐고 정부와 정치인들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고 장담을 했지만, 비슷한 사고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위의 시는 용광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에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불꽃을 피우자는 절규입니다. 그런데 2018년에는 비슷하게도 한 청년이 컨베이어벨트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한국의 노동현장은 척박한 안전사각지대가 너무 많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 산재로 숨진 하청 노동자는 2016년 355명, 2017년 344명, 2018년 312명으로 총 1011명이었으며, 매년 300명 이상이 숨졌습니다.

 

2018년 산재로 숨진 전체 노동자 804명 중 하청 노동자 비율은 38.8%에 달했습니다. (경향신문 2019.10.28.) 김용균 씨 사망 이후인 2019년 2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6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외주.하청노동자가 작업 중 숨졌습니다.

 

2019년 9월 한 달간 언론에 보도된 산재 사망사고만 40여 명입니다. 9월 20일에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작업하던 하청 노동자가 절단 작업 중 김용균 씨와 비슷하게 몸이 끼이는 사고로 숨졌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고사망률 압도적 1위인 한국은 김용균 사망 이후에도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척박한 노동 환경,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차별, 설마 하는 안일함, 기업과 정부 등의 무책임함 등 총체적인 시스템 문제가 아닐까요? 

 

위의 시(詩)는 랩과 유사합니다. 우린 랩 같은 시를 통해 세상을 꼬집기도 하고, 억울한 자를 위한 기도를 올릴 수도 있으며, 구역질 나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을 수도 있으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불꽃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 김경주는 시인이자 포에트리 슬램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시와 랩은 세상의 모순을 고발하는 중얼거림의 시위이기도 합니다. 

 

위의 시에서 첫째 연은 내가 용광로에 빠진 날, 내 몸이 뜨거운 쇳물에 녹아버려 순식간에 사라진 사건에 대한 고발입니다. 사업주와 정치인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내 이름도 기억못하겠지만” “어머니에게 머리카락 한 가닥 손가락 한 마디 남기지 못했으니까”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사람들은 머지않아 나의 이름조차 잊어버리고 그저 발을 헛디뎌 용광로에 빠져 죽은 청년이 있었다고, 그것을 순전히 내가 발을 헛디딘 탓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둘째 연은 용광로에 빠진 사람의 몸이 쇳물과 같이 녹아 “당신의 밥 먹는 숟가락이 되었을까” “나는 당신 집의 젓가락이 되었을까”라고 하며, 무책임한 사업주들과 세상 사람들을 향한 외침입니다. 용광로에 빠져 쇳물이 된 나의 잘못은 철강공장에서 일한 죄, 발을 헛디딘 죄일 뿐입니다.

 

그게 나의 잘못일까요? 사업주와 정부, 그런 위험을 무감각하게 용인하는 기업과 사회의 시스템의 문제일까요? 용광로에 빠진 나의 심장은 식어버렸지만,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용광로에 빠진 청년의 몸이 녹아 있는 쇳물로 만든 숟가락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면서 그것을 잊어버릴 것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셋째 연에서 용광로에 빠져 눈사람처럼 녹아 쇳물이 된 청년의 영혼은 꿈을 꾸고 어머니를 만납니다. 사라진 내 손가락을 세어보는 어머니와 손가락으로 숟가락을 잡고 밥을 먹고 싶습니다. 공장에 출근하여 내가 숟가락이 되어 나오는 꿈을 꾸는데, 여전히 기계들은 눈사람들을 쇳물로 녹이고 숟가락 젓가락을 만들어냅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이 녹아 있는 숟가락으로 밥과 국을 먹습니다. 어머니라는 용광로에서 나온 나는 용광로에 녹아 숟가락이 되어 부엌에 차갑게 뒤집어져 있다가 밥에 닿아 눈물에 닿아 영혼까지 녹아내립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의 두 가지 절규를 보았습니다. 첫째는 불의와 부조리와 부당함에 무감각해진 우리 사회에 대한 고발입니다. 우린 그런 큰 사고가 있으면 그때는 혀를 차다가 곧바로 잊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어떤 악덕 기업주와 정치인, 그에 동조하는 자들은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지요. 그것은 엄청난 갑질이며 보이지 않는 폭력입니다. 그런 위험한 사고는 대부분 시스템과 구조상의 문제이며 그것을 용인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문제입니다.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잊어버리고 무감각한 대중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은 뜨거운 쇳물에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지만, 위험의 외주화와 빈번한 산업재해 방지와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노동 약자들에게도 안전하고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어 달라는 외침의 불꽃을 지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부와 기업, 무감각해진 사회시스템을 향한 시위의 불꽃입니다. 그 불꽃이 세상을 바꾸는 불꽃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원래 불꽃을 피우는 자는 개인이거나 소수입니다. 그 소수의 불꽃에 대중이 동참할 때 그것은 불길이 되며 그 불길은 세상을 바꿉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자유론』에서 그런 사람들을 [악마의 대변인]이라고 말합니다. 악마의 대변인은 다수를 향해 의도적으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밀은 인간답고 자유로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악마의 대변인의 [반론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론의 자유는 침묵하거나 절대다수를 향한 반론입니다.

 

밀은 자유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의견이 어떠한 반론에도 논박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옳다고 상정되는 경우와 당초에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목적으로 미리 옳다고 상정되는 경우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고 반증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서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세상에는 부조리하고 부당한데도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소수가 그것을 문제 삼아도 관심을 두지 않거나 오히려 문제 삼는 소수를 핍박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늘 그런 소수의 반론에 의해 건강하게 발전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신분제 사회에서는 신분제가 당연한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분제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소수에 동참하는 불꽃에 의해 신분제는 폐지되었습니다.

 

밀은 자유론에서 소크라테스나 예수가 당시에는 다수에 의해 처형되었지만, 세월이 흐른 후 그들이 남긴 사상과 신조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진리로 받아들여지지는 즉 다수에 의해 악으로 취급되던 것이 세월을 견디면서 선이 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진리는 항상 소수의 반론의 자유 때문에 빛나며 세상은 더욱 발전된다는 것입니다. 반론의 자유는 세상을 건강하게 가꾸는 힘입니다. 

 

밀의 관점에서 보면, 엘리트 집단이 자기들의 이념과 행동의 법칙이란 틀에 갇혀 버리면 매우 위험해집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신념으로 믿는 것만이 진리로 받아들여 오판하게 되고 타인에게 엄청난 폭력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 모여도 동질적인 사람만 모이면 의사결정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고 오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도 소수의 반론에 의해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다수에 집중하는 민주주의가 소수의 의견을 무시할 때 위험에 빠집니다. 대통령이 지지율에 매달려 자기 정책과 철학만을 고집하면 오판하기 쉬우며, 민주주의가 다수에만 집중하다 보면 민주주의를 가장한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악마의 대변인의 반론의 자유에 의해 한국 민주주의도 발전해 왔습니다. 이승만 독재와 3.15부정선거에 불꽃을 피운 김주열(1943년~1960년 3월 15일) 열사, 군사 독재 시절의 박종철(1965년 4월 1일 ~ 1987년 1월 14일) 열사, 이한열(1966년 8월 29일 ~ 1987년 7월 5일) 열사 등은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불꽃이었으며, 전태일(1948년 8월 26일 ~ 1970년 11월 13일) 열사는 인간다운 노동의 불꽃이 되었습니다.

 

작은 촛불이 모여 혁명을 이루었듯이 그 불꽃에 뜻을 모으면 세상을 바꿉니다. 그 불꽃은 늘 개인이나 소수로부터 출발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순교자들입니다. 

 

순교란 종교적인 이념이나 정치적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세상의 부당함에 자의든 타의든, 사고든 자결이든, 죽은 자의 절규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한 힘이 될 때 그것은 순교가 됩니다. 그가 남긴 불꽃을 들불로 피워내는 길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후 예수의 복음을 전하던 제자들처럼 남은 자들의 몫입니다.

 

그 불꽃은 모순 속에서 모순에 대하여, 폭력 속에서 폭력에 대하여, 아무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성찰을 줍니다. 화력발전소에서 벨트에 끼어 가루가 된 청년도 불꽃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우린 용광로에 빠져 눈사람이 된 청년, 화력발전소 벨트에 가루가 된 청년의 불꽃을 피워내야 합니다. 그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며, 다수의 갑이 바뀌게 하는 힘입니다. 이제까지의 무감각을 털고 일어나 불꽃을 피워냄으로써 아름다운 노동현장을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나아가 부정과 부패, 모순과 폭력을 녹여버리는 거룩한 불꽃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인의 일인시위인 《용광로에 빠진 눈사람》이, 밀이 말하는 [악마의 대변인]이 되어 [반론의 자유]를 펼침으로 이 땅을 아름다운 노동현장,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불꽃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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