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세상 읽기] 《겨울 노래》가 낭만적이지 않은 사람들

이상호 | 입력 : 2019/12/10 [10:40]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이어지고 있는 아침. 아파트 베란다 창밖을 무심하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가 차가운 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나는 따뜻한 이 방안에서 차가운 바람조차 느끼지 않고 서서 겨울 사색을 즐기는데 저들은 저토록 차가운 바람결에 떨고 있구나. 마음 한편에서는 불쌍하다는 연민이 솟구쳤습니다. 그땐 겨울 시 신규호의 《겨울 노래》를 읽고 난 후였습니다. 

 

겨울 노래

 

-신규호(1933~ )- 

 

 

빈 항아리는 아름답다.

 

장독대에서 눈을 맞는

 

질그릇은 모두 아름답다.

 

잿빛 하늘 아래

 

가지를 치켜든 동백 한 그루

 

잎 진 빈 나무는 아름답다

 

다만 두 팔을 휘저으며

 

깊은 겨울을 활보하는 사람들,

 

외투자락이 흔들고 간

 

빈 공간에 나부끼는

 

눈발은 아름답다

 

성긴 가지 사이로 트이는 하늘,

 

가슴 열고 한 마리 새를 기르며

 

가냘픈 노래와 울음을 사랑하는

 

겨울 산은 아름답다

 

빈 항아리는 아름답다.

 

눈을 맞는 빈 그릇은 모두 착하고

 

아름답다.

  

겨울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아름답게 이미지화했습니다. 모두 비워졌기 때문이랍니다. 구도적이라 할까, 순명(順命)이라 할까, 어쨌든 겨울에 눈을 맞고 비우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겨울에 눈이 소복이 내려 비운 가운데 눈을 맞아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도 모든 허물을 감추고 있으니 빈 항아리가 아름답고 장독대에서 눈을 맞는 모든 질그릇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착시이며 그 착시를 통해 새로운 자아 존재를 꿈꾸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잿빛 하늘 아래 잎 진 빈 가지를 치켜든 동백도 아름답고 두 팔을 휘저으며 깊은 겨울을 활보하는 사람들의 외투 자락이 흔들고 간 그 빈 공간에 나부끼는 눈발도 아름답고, 성긴 가지 사이로 트이는 하늘, 가슴 열고 한 마리 새를 기르며 가냘픈 노래와 울음을 사랑하는 겨울 산도 아름답다’고 합니다. 겨울에 눈이 덮고 있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대상이 아름답다는 것이지요. 현실 존재에 대한 지극히 낭만적인 관념의 이미지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빈 항아리가 아름답답니다. 강한 비움의 철학이며, 자기성찰을 향한 시인의 관념적 존재 이미지인지도 모릅니다. 

 

인생을 성찰하는 사람들은 겨울의 발가벗은 나무에 자신을 비추며 비움의 철학을 키워가기도 하고, 추위와 차가운 바람결에 인내의 숙연함을 말하기도 합니다. 연인들에게 눈 덮인 산과 들, 강가는 사랑을 키우는 낭만의 장소가 되고, 길을 걷는 자에게 눈 내린 대지는 아련한 발자국을 남기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눈 내린 겨울은 눈 지치기를 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이지요. 어떤 이는 겨울이 오기를 고대하다 눈이 내리면 창고에 넣어둔 스키를 꺼내어 상상의 날개를 펴며 꿈에 부풀어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이렇듯 겨울은 인간에게 현 존재인 자기를 성찰하게 하고 새로운 즐거움을 찾게 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배부른 돼지보다는 고민하는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존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1806. 5. 20~1873. 5. 8)의 말처럼 깊은 성찰은 배부르고 편안할 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성찰하고 깨달으며 자기 존재성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성의 자각이 척박한 가운데서의 이룬 것이라면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 존재성의 자각은 외딴곳에 홀로 떨어진 개별 존재로서의 자각이 아니라 “세계 내 존재”로서 타자와의 관계를 발견하면서 더욱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기 존재의 깨달음은 자기를 넘어 타자에게로 나아갈 수 있으며 타자와의 공존을 이룰 때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성의 자각을 위해선 세상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겨울 노래》에서 잊고 있는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앞에서 말한 그 겨울이 모든 이에게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은 아닙니다. 홍경래의 난 때 아버지가 잘못된 지도를 들고 병사를 안내하다가 혹독한 겨울 눈 덮힌 산골짝에서 모두 동사한 것을 보고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다짐한 후 평생을 바쳐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에게 겨울은 한(恨)입니다. 겨울은 전쟁터의 병사에겐 지옥의 계절이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혹독한 시련의 계절입니다. 그래서 저도 따뜻한 방안에서 신규호의 《겨울 노래》를 읽으며 겨울 사색을 즐기다가 차가운 바람결에 떨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며 마음 한편에서 불쌍하다는 연민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1월 19일에는 인천에서 생활고를 비관하여 20대 아들과 10대 딸 친구 3명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으며, 11월3일에는 성북동에서 70대 노모와 40대 딸 3명이 장기연체된 수도요금을 남긴 채 숨졌습니다. 9월에는 대전에서 43살의 남자가 33살의 아내와 초등학교 2학년 딸과 6살 아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의 주머니에는 7개월째 밀린 월 3만 원대의 우윳값 고지서가 있었답니다. 겨울이 닥치면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하는 사람들과 고독사가 늘어납니다. 11월 13일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살 통계에 의하면, 2017년 1만 2426명에서 2018년 1만 3216명으로 증가했는데 이 중에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 2017년 3111명에서 2018년 3390명으로 늘었다는 것입니다. 복지 혜택은 늘어간다는데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 늘어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따뜻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겨울은 감옥입니다. 

 

겨울이 무서운 사람들은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어느 정도라도 여유 있는 사람들은 더욱 냉난방과 단열이 잘되는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집안에서 셔츠 바람으로 지내기도 하고 덥다고 창문을 열어 놓기도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주택 환경이 열악하여 창틈을 뽁뽁이로 메우고 그것도 없으면 신문지로 메웁니다. 지하 단칸방의 가혹한 냉기를 몸으로 막으며 지내기도 하지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좁은 전기장판에서 자다가 아침에 급히 일터에 나갈 때 끄지 않고 가서 안절부절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랍니다. 그들에게는 전기장판의 화재보다는 전기세가 더 걱정이겠지요. 혹한에도 전기장판의 온도마저 낮추고 지내야 하는 사람들, 반지하에서 작은 전기장판에 몸을 고부리고 자야 하는 독거노인과 어린아이들이 아직도 많은 나라가 선진국으로 향하는 한국의 모습입니다. 날로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는데 정부는 GDP만 내세우며 잘되어가고 있다고 하고, 한전은 전기세를 인상하려고만 합니다. 전기세가 인상되면 가장 서러운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날이 갈수록 구제의 손길은 적어지는 것 같습니다. 전에는 겨울이 오기 전에 연탄 나르기 봉사와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많았는데 이제는 각 단체의 연례적인 행사처럼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기부도 적어지는 것 같습니다. 겨울은 공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마음의 계절인데 그 공존의 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안한 경제 상황 탓이기도 할 것입니다. 

 

『맹자(孟子)』 「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에서 “백성들은 항산(恒産-먹고 살 만한 재물)이 없다면 항심(恒心- 지속적인 도덕심)도 없다.(則無恒産因無恒心)”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춥고 배고픈데 《겨울 노래》는 그들에게 사치요 위화감이며 고통의 노래일 뿐입니다. 공자가 논어 〈술이述而〉편에서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그것을 베고 살더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 의롭지 않으면서 부하고 귀함은 나에게 있어서는 뜬구름과 같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고 하였지만, 먹고 살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굶주림에 시달린다면 그런 도의도 사라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문제이며 삶은 공존의 문제입니다. 진정한 자아는 자아를 초월한 타자와의 관계로 성숙 됩니다. 내가 《겨울 노래》를 부르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겨울 노래는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추위에 떨며 새우잠을 자야하는 사람들이 사라질 때 가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도 ‘평온한 저녁’을 꿈꿉니다. 박노해의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노동의 새벽』,느린 걸음, 2015)의 한 구절을 읽어봅니다. 따뜻한 연말이기를 바랍니다. 

 

“믿을 거라곤 이 근육 덩어리 하나/착한 아내와 귀여운 딸내미/기만 원짜리 전세 한 칸뿐인데/괴롭기만 한 긴 노동/쪼개고 안 먹고 안 입어도/남는 것 하나 없이 물거품처럼/이러다간 언제 쓰러질지 몰라///상쾌한 아침을 맞아/즐겁게 땀 흘려 노동하고/뉘엿한 석양녘/동료들과 웃음 터뜨리며 공장문을 나서/조촐한 밥상을 마주하는/평온한 저녁을 가질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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