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세상 읽기] 뮤지컬로 다시 태어난 《나․나․흰》을 보며

이상호 | 입력 : 2019/12/26 [08:40]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자야.” “왜 다시 왔어요.” “밖에 달이 너무 밝아서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내일 가야겠다.” 길을 떠나다 돌아온 시인은 “자야”의 무릎을 베고 드러눕는다. 박해림(34) 작가가 쓴 뮤지컬 《나․나․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한 장면입니다. 

 

몇 년 전부터 12월이면 백석의 시《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으며 눈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올해는 뮤지컬 《나․나․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유튜브로 다시 보면서 눈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눈은 오지 않습니다. 와도 흩날릴 뿐입니다. 흩날리는 눈은 마음만 산란하게 합니다. 어린 시절 함박눈이 내리면 학교 갈 일이 두려웠지만, 포근하고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아 뛰쳐나가 눈 지치기를 한 추억이 있습니다. 사춘기의 눈 오는 밤에는 미지의 소녀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기도 했지요. 그때 눈은 가난한 자에게나 부자에게나 사랑과 신비를 꿈꾸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눈이 나의 삶에서 장년기 한동안은 귀찮은 존재로 변했다가 나이 들면서 다시 기다려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눈이 간직한 사랑과 낭만 때문입니다. 백석(본명 백기행)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다시 읽습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1912~1996)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시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가을의 이미지가 쓸쓸함과 성찰이라면 겨울의 이미지는 사랑과 그리움일 것입니다. 1938년 『여성』지에 실린 이 시는 감미로운 토속언어로 한밤중에 내리는 함박눈을 보고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며 상상으로라도 사랑을 이루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시에는 가난한 시인이 나타샤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라마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시에서는 시종(始終), 사랑을 애절하게 하는 매개로서 눈이 등장합니다. 한밤중에 푹푹 내리는 눈은 낭만적이고 서정적입니다. 사춘기 소년은 어김없이 미지의 소녀에게 시를 넣은 편지를 쓸 것입니다. 푹푹 내리는 흰 눈은 오염된 대지를 덮는 순수한 세계에 대한 갈구이며 마음의 정화입니다. 그러나 바람에 흩날리는 눈은 사랑과 순수에 대한 성가신 방해꾼입니다. 푹푹 쌓인 눈은 세상과 단절시키는 고립과 혼탁한 현실에 대한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그런 눈을 매개로 사랑하는 여인을 이국적인 분위기로 가장 아름답게 탄생시킨 ‘나타샤’, 그 나타샤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을 달래는 ‘소주’, 시인의 그런 마음을 달래고 이어주는 순수하고 깨끗한 존재로서의 ‘흰 당나귀’는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함박눈이 내리거나 낙엽이 바람이 우수수 떨어지는 환경의 변화는 가슴 깊이 간직했던 사랑과 슬픔을 솟구치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특히 누군가를 애절하게 기다리거나 고뇌에 찬 사람에게 그런 환경의 변화는 더욱 그런 심성을 자극합니다. 제1연의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는 바로 그런 시인의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난한 시인이 나타샤를 사랑하는 것과 눈과의 과학적인 인과관계는 없지만, 심리적인 인과관계는 강합니다. 시인은 가난한 자신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이 내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난한 시인이 한밤중에 눈이 푹푹 내리는 것을 보니 사랑하는 나타샤가 그리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움이 사무치면서 상상 속에서 나타샤를 사랑하여 어느 산골로 흰 당나귀를 타고 떠납니다. 

 

환경의 변화와 분위기의 고조는 깊은 감성을 자극하지요. 그리고 그 감성은 상상의 세계로 데리고 가 자기만의 세계를 탐닉하게 하지요. 제2연에서 가난한 시인에게 눈 내리는 밤은 상상으로라도 사랑을 이루게 합니다. 바람이 불어 흩날리는 눈은 나타샤를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에 주는 시련입니다. 눈이 너무 내리고 바람에 흩날려 나타샤가 못 올 수도 있습니다. 눈은 사랑을 이어주는 낭만의 매체이지만, 일제의 암울한 시기에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시인에겐 사랑도 마음대로 이루기 어려운 가혹한 현실입니다. 눈은 푹푹 내리는데 사랑하는 나타샤는 곁에 없습니다. 곁에 없는 나타샤를 애절하게 그리며 혼자 쓸쓸히 소주를 마십니다. 소주를 마시며 또 나타샤를 그리워하고 취기가 감돌면서 상상의 세계를 펼칩니다. 시인은 나타샤에게 흰 당나귀를 타고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서 마가리(오두막)에 살자고 진한 바람을 토해냅니다. 

 

시인이 나타샤를 데리고 가고자 하는 곳은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입니다. 출출이는 ‘뱁새’의 방언으로 깊은 산골에 삽니다. 지금 사는 세상은 시인의 순수한 삶과 사랑을 방해합니다. 깊은 산골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같이 문명과 세파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세계이며 어떤 억압도 없는 순수한 삶과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낙원입니다. 거기서 시인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만의 사랑을 이루고 싶습니다. 

 

상상은 기다림에서 현실로 이어집니다. 3연에서 시인은 “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고 확신으로 기다리다가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고 상상을 현실화하여 나타샤를 곁에 앉히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타샤의 입을 통해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고 합리화를 합니다. 사랑을 방해하는 가난과 외부적 억압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순수한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이며 자기 위안이기도 합니다. 

 

4연의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고하면서 시인은 상상 속의 산골에서 사랑을 이룹니다. 여전히 푹푹 내리는 눈은 둘의 사랑을 더욱 포근하게 할 뿐만 아니라 누구도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산골에 오니 아름다운 나타샤가 나를 사랑합니다. 깊은 사랑에 빠집니다.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며” 사랑을 축복해 줄 것이라 상상합니다. 

 

이 감미로운 시를 쓴 백석 역시 정지용처럼 해금시인(解禁詩人)입니다. 위의 시에 대한 이해를 위해 백석의 삶과 위의 시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정주가 고향인 백석은 일본(아오야마가쿠인 대학교)에 유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시문학 활동을 할 때 통영이 고향이고 이화여고에 다니는 ‘란’이란 신여성을 사랑합니다, 백석은 ‘통영’ 이란 시를 발표하며 그녀를 만나러 통영까지 갔지만 못 만납니다. ‘란’은 뒷날 백석의 친구 신현중과 결혼합니다. 이때 백석은 깊은 실의에 빠집니다. 

 

사랑의 가슴앓이를 하던 백석은 그 후 함흥의 영흥고보에서 영어교사를 하던 중 동료의 송별회가 있던 요리집 함흥관에서 관기였던 기생 김진향(본명 김영한)을 만나자 첫눈에 반했답니다. 그때 백석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사랑을 고백하며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에 이별은 없다’고 맹세했답니다. 그 후 그들의 만남은 계속되고 백석은 김진향이 좋아하는 이백의 시『자야오가』 에서 딴 “자야”를 애칭으로 지어줍니다. 둘은 깊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백석의 부모는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기 위해 서둘러 결혼시킵니다. 이를 안 진향은 서울(한성)로 옵니다. 그러자 백석도 학교를 그만두고 한성에 와 진향에게 같이 만주로 떠나자고 간청하지만, 진향은 백석의 간곡한 청원을 거절합니다. 이 시는 그때 진향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시랍니다. 러시아어에 능통했던 백석은 ‘자야’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주인공 “나타샤”에 비유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백석은 만주로 가서 행정(만주국)에 정착하여 살다가 6.25 전쟁으로 북쪽에 남게 되고 북한 정부에서 잠시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있었다는 소식 외에는 알 수 없었답니다. 1962년경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무렵 1980대 중반에 백석이 70대 중반 북한에서 촬영한 가족사진이 공개되어 생존이 확인되었고, 1996년 1월까지 살다 죽은 것으로 확인된답니다. 

 

백석이 그토록 사랑한 여인 ‘자야’는 서울에 남아있었기에 백석과는 그때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었고 죽는 날까지 백석을 잊지 못한 것으로 전합니다. 자야는 서울에서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하다가 죽기 일 년 전에 법정 스님에게 그동안 모은 재산 천억 원가량을 시주하면서 “그게(1,000억 원) 백석의 시 한 줄 만도 못하다”고 했답니다. 평생 백석의 시와 사랑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 것입니다. 

 

이 백석의 아름다운 사랑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박해림(34) 작가에 의해 뮤지컬 《나․나․흰: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뮤지컬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공연되었습니다. 그리고 제13회 차범석 희곡상 뮤지컬 부문에 당선됩니다. 《나․나․흰》은 박해림 작가의 첫 대본이자 당선작입니다. 뮤지컬 《나․나․흰》은 백석의 젊은 시절 ‘자야’와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와는 설정이 다릅니다. 뮤지컬에서는 주인공이 백석이 아니라 ‘자야’이며 노인이 된 ‘자야’에게 백석이 찾아오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동안 헝클어진 이들의 짧은 만남이 회상으로 전개됩니다. 그리고 백석의 시처럼 출출이, 마가리 등 정주와 만주 등의 향토 방언이 등장합니다. 뮤지컬 《나․나․흰》은 백석의 시가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자야’의 애틋한 순정을 20세기 한반도의 비극적 단면과 같이 보여준 작품으로 백석 시의 서정적인 미감과 선율을 오롯이 뮤지컬 언어로 살려내 새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박해림 작가는 백석의 시를 좋아해 길상사를 자주 찾았고 백석의 시 전집을 통째로 외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바다’ ‘흰밥과 가재미와 우린’ ‘여우난곬족’ 등 20편 가까이 되는 시를 노랫말과 대사로 꾸몄다고 합니다. 젊은 작가의 온고지신(溫故知新) 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지요. 

 

요즈음은 젊은이들뿐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고전 읽기를 거부합니다. 한 대화에서 논어 관련 강의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그런 고리타분한 것 말고’라며 미리부터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논어니 공자니 하면 듣지도 않고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거지요. 중고등학생들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고전이나 철학적 사색이 깃든 소설 같은 것은 아예 눈여겨보지도 않으며 교실 수업에서도 어렵고 지루한 것은 딱 질색이라 합니다. 

 

일찍이 공자는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논어 위정(論語 爲政)고 하면서 배움은 온고지신(溫故知新)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 공자에게 제자들이 어떻게 그런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풀어서 해석했을 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지는 못했고, 옛것을 믿고 좋아하고 따랐을 뿐이다(述而不作 신이호고)」(논어 술이 論語 述而)고 하여 모든 배움과 창조는 선조의 사상과 삶을 찾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4차 산업 시대에 무슨 고전이냐라고 말하겠지만 진짜 위대하고 아름다운 창조는 고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린 르네상스 정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와 전통, 고전은 미래를 여는 영양제이자. 창조의 정신적 유산입니다. 뮤지컬로 다시 태어난 《나․나․흰》을 보면서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이 온고지신의 르네상스 정신으로 고전을 다시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지용의 시가 노래 <향수>로 거듭난 것처럼, <나․나․흰>이 가요나 케이팝(K-POP)으로 탄생할 날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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