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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디 이런 후보는 없습니까?

이상호 | 입력 : 2020/04/14 [12:33]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당선되어도 지역구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겠다. 당선되어도 소속당의 의견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겠다. 선거 운동에 절대 돈을 쓰지 않겠다. 선거 운동도 안 할 것이다.'

 

이 말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5. 20~1873. 5. 8)이 1865년 당시 59세의 나이에 웨스트민스터 선거구 하원의원에 출마하여 내세운 공약입니다. 밀이 이 공약을 내세웠을 때 언론들은 ‘신이라도 이 조건으로는 당선되지 못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밀은 실제로 이 공약을 철저하게 준수하여 선거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예상을 뒤엎고 당당하게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그것은 밀이 당시 철학과 현실 정치에 얼마나 명망이 높았는지를 말해 줍니다. 

 

하나 더 주목할 일은 그러한 밀을 당선시킨 영국 시민들입니다. 당시 선거풍토로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거나 지역구를 위해 일하지 않으면 당선은커녕 눈여겨보지도 않았습니다. 시민들 대부분은 정파와 정당을 통해 후보자를 가늠하고 지지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영국 시민들이 밀을 당선시킨 것은 정치적 실험이자 민주주의의 또 다른 승리이며 의미 부여였습니다. 

 

59세에 하원의원이 된 밀은 젊은 시절처럼 열정적이었으며 급진적이었습니다. 당시는 여성차별과 귀족 중심의 신분 차별이 일반적인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밀은 대중을 향해 남녀평등을 강하게 부르짖었고, 노동자 계층의 권리와 평등을 위해 일했습니다. 비록 소속당의 당론이라도 이치에 맞지 않으면 반대했고,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도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모든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며, 자유에는 책임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항상 ‘반론의 자유’를 존중하며 ‘반론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핵심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밀은 그의 정치적 주장의 합법성을 위해 법안마련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사상과 주장대로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충실하게 했습니다. 

 

밀이 말하는 ‘반론의 자유’와 ‘악마의 대변인’이란 비록 그 의견이 당론(黨論)이라 하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의롭지 못하면 기탄없이 반대하며, 다수가 지지하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으면 반대하고, 정당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밀은 『자유론』에서 예수나 소크라테스가 비록 당시에는 다수의 의견으로 악인(惡人)으로 규정되어 처형되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는 선인(善人)으로 인정되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구별은 오랜 기간 다면적인 사고와 기탄없는 토론을 통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록 다수의 의견이지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반론의 자유’이며, ‘아니오’라고 말함으로써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자를 ‘악마의 대변인’이라 했습니다. 밀은 민주주의와 인권은 바로 이 ‘반론의 자유’와 ‘악마의 대변인’에 의해 지켜진다고 했습니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누구를 찍을까요?’ 아무리 봐도 찍을 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정당을 보면 인물이 맘에 안 들고 인물을 보면 정당이 마음에 안 들고, 상당히 많은 후보가 사소하다지만 전과가 있고, 전과가 없는 후보 중에는 인기도가 떨어집니다. 후보마다 중앙당에 목을 매고 중앙당의 정강과 정책을 지지하고 호소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여당은 다수 의석을 차지하여야 문재인 정권의 후반기 국정 운영이 순조로우며 의도한 정치개혁과 법안 통과가 쉽다고 지지를 호소하고, 야당은 여당 심판론을 들로 나왔습니다. 여당은 거대 야당에 친일프레임을 뒤집어씌웠고 야당은 여당에 경제실패와 친북 프레임을 뒤집어씌웠습니다.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개정한 선거법은 군소정당과 위성 정당을 난립시켜 정당이 하도 많아 가름하기 어렵고, 그 정당을 지지하면 누가 당선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투표용지가 하도 길어 어디에다 찍을지도 걱정입니다. 어쩌다가 대한민국 정치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정치 풍토에선 ‘아니오’라고 말하는 의원은 살아남기 힘듭니다. 그리고 시대적 담론에 함부로 소신을 말하기 힘듭니다. 어떤 이는 당론에 반하는 발언을 하여 공천에서 가차 없이 탈락했고, 어떤 이는 소신 발언을 한 것이 막말이 되기도 하여 파장을 일으킵니다. 모든 것이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선거이며 합리적 판단보다는 지지 정당에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지난 지방 선거보다 더 심한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찍는 ‘깜깜히 선거’,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무조건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를 찍는 ‘묻지마 선거’가 될 공산이 큽니다. 만약 한국의 선거가 이번에도 그렇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발전이 아니라 후퇴할 것이며, 정치는 더 실종될 것입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총선을 하루 앞둔 지금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과 같은 후보를 찾는 일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인 듯합니다. 그래도 사소하다지만 전과가 없는 후보,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후보, 공약(空約)이 될 거대한 공약(公約)을 내세우며 허세를 부리는 후보가 아닌 책임 있는 공약(公約)을 내세우는 후보, 중앙당의 눈치만 보지 않고 자기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후보, 정의를 위해서는 반론의 자유를 펼치며 당당할 수 있는 후보, 정당보다는 민주주의와 지역과 국가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소신 있는 후보는 없을까요? 

 

욕심이 과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위의 바람 중에 한두 가지라도 충족할 수 있는 후보가 있다면 나는 그를 지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권자에게 바랍니다. 정당만 보고 찍는 ‘묻지마 투표’나, 누가 당선될지도 모르고 찍는 ‘깜깜히 투표’는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번 선거가 꼭 민주주의와 인권, 법과 정의를 지키고, 국가의 균형 발전을 계획할 수 있는 소중한 주권행사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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