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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정과정곡》, 참외를 먹으며 떠올린 충심과 스승에 대한 그리움

이상호 | 입력 : 2020/08/21 [14:44]

 

▲ 이상호 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3년째 참외를 심었다. 첫해는 두 포기를 심었는데 별로 따 먹지 못했다. 작년에는 3포기를 심었는데 그런대로 심심찮게 따 먹었다. 작년의 참외는 많이 달리지 않았고 크기가 작았지만, 맛은 좋았다. 크기가 작은 것은 거름이 부족한 탓이었고, 많이 달리지 않은 것은 순지르기를 잘못한 탓이었다. 맛이 있었던 것은 햇볕이 쨍쨍한 날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참외를 제대로 수확해 보자고 작심하고 포기의 간격을 정해 구덩이를 파고 밑거름을 제대로 했다. 수시로 순도 질러주었다. 참외 넝쿨은 무성했다. 많이 달렸다. 크기도 상품 수준이었다. 초기에는 잘 따먹었다. 장마가 계속되자 일부는 물에 잠겼다. 어느새 참외 넝쿨은 녹아 죽어가고 있었다. 성한 참외를 모두 수확하여 손질해 냉장고에 보관해서 몇 날을 먹었다. 참외를 먹으면서 줄곧 학창 시절의 선생님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50년 전이 다 된다. 그때 젊은 김동건 아나운서가 전국의 고등학교를 탐방하며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우리는 고교생>이 우리 학교에서 있었다. 그때 프로그램 참가자는 나를 포함해 4명이었는데, 주제가 “원두막”이었다. 나에게는 주제설명이 주어졌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고문(古文) 선생님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원두막 하면 뭐가 떠오르나?” “예, 참외와 수박이 떠오릅니다.” “그래 참외가 있지. 그럼 고전에서 배운 《정과정곡》을 가지고 원두막이란 주제를 풀어가면 어떻겠니?” 

 

나는 몇 날을 고민하며 고려가사인 정서의 《정과정곡》을 읽으며 참외와 정서(鄭敍) 그리고 원두막의 사연을 풀어갔다. 선생님은 나의 원고에 만족해하셨다. 그리고 실제 녹음의 날 나는 《정과정곡》을 소재로 하여 “원두막”이란 주제를 풀어갔다. 시간도 잘 맞추었다. 나름 성공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나에게 중요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그 추억은 책갈피 속에 간직된 나뭇잎에 불과했었다. 그것이 올해 참외를 심어 먹으면서 다시 살아났다. 오랫동안 잊었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찾아뵙지 못한 미안함이 가슴을 후볐다. 

 

책을 뒤져 옛날 읽었던 고전 운문을 찾았다. 그리고 정서의 《정과정곡》을 몇 번이고 읽었다. 《정과정곡》은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 충성스러운 신하가 군주를 연모하는 가사)이지만 나에겐 스승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그 《정과정곡》을 고어(古語)와 현대어로 같이 음미해 본다.

 

정과정곡(鄭瓜亭曲)

정서(鄭敍 ??)

 

내 님믈 그리와 우니다니

() 졉동새 난 이슷요이다

아니시며 거츠르신아으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아시리이다

넉시라도 님은  녀져라 아으

벼기시더니 뉘러시니잇가

()도 허믈도 천만(千萬) 업소이다

힛 마러신뎌

읏브뎌 아으

니미 나 마 니시니잇가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정과정곡(鄭瓜亭曲)

정서(鄭敍 ??)

 

내가 님을 그리워하여 울고 지내더니

산에 접동새와 나와는 비슷합니다요

옳지 않으며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아~

잔월효성(殘月曉星)만 알고 있을 것입니다.

넋이라도 임을 함께 모시고 싶어라. 아~

내 죄를 우기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저는 過失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뭇 사람들이 참소하던 말입니다.

슬프구나

임께서 벌써 나를 잊으셨습니까

맙소서 임이시어, 내 사연을 들으시고 다시 사랑하소서


『악학궤범』에 실렸다고 전하는 정서의 이 가사는 작가가 밝혀진 고려의 유일한 가사이자. 유배문학의 시작이라 전한다. 또 충신이 군주를 그리워하며 불러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의 시작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런 유형의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는 조선 시대에 와서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서 절정을 이룬다. 송강 정철도 정서의 《정과정곡》을 토대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썼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우선, 시의 이해를 위해 이 시에 얽힌 정서의 이야기부터 살펴본다. 정서는 고려 시대의 문장가요. 충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시(詩)뿐 아니라 묵죽화(墨竹畫)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그의 호는 과정(瓜亭)이며 고향은 부산 동래로 알려졌다. 그래서 부산에 가면 정과정곡 유적지(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가 있다. 이 곡을 《정과정곡》 혹은 《정과정》이라 하는 것은 그의 호를 따서 후세 사람들이 지은 것이다.

 

정서는 고려 인종 때 제18대 의종의 어머니인 공예태후(恭睿太后)의 여동생의 남편으로 외척이었다. 그래서 인종의 총애를 받아 내시랑중(內寺郞中) 이란 높은 벼슬살이를 하였다. 1146년 인종이 죽고 의종이 즉위했다. 의종은 인격이 고르지 못했고 행동을 아무렇게나 하는 면이 많아 신하들이 당황하였다. 의종은 동생들의 움직임에 의심이 많았다. 의종 1년에 환관 정함이 김존중(金存中) 등이 ‘왕경을 추대하려는 역모사건’이 있다고 고발하였고, 여기에 정서가 관련되었다는 거짓 고발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서는 탄핵되어 동래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정서는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의종은 정서를 귀양 보내면서 ‘오늘 가게 된 것은 조정의 의론에 몰려서이니 머지않아 다시 소환하게 될 것이다.’고 약속해 주었다. 

 

정서는 이 말을 찰떡같이 믿고 동래로 가서 과정(瓜亭)이란 이름의 원두막을 짓고 밭에 참외(일설에는 오이라고도 함)를 심고 가꾸면서 자연을 벗 삼아 지냈다. 정서는 몸가짐을 바로 하고 경건하게 송악을 바라보며 왕이 불러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조정에서는 소식이 없었다. 정서는 답답한 가슴을 안고 왕에 대한 충심은 변함이 없으며 자신은 죄가 없으니 다시 조정으로 불러 달라는 간곡한 곡조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왕은 20년이 다 되도록 부르지 않았다. 정서는 의종이 정중부의 난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후에 다시 관직에 등용되었다. 

 

《정과정곡》은 임금을 그리워하는 충신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을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여인의 마음에 빗대어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는 총 11행으로 기, 서, 결의 3단으로 구성되었다. 기(起)의 1〜4행은 ‘접동새, 잔월효성(殘月曉星)’등 자연현상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며, 자신이 매우 고독하게 지내고 있으며 결백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것을 “내가 님을 그리워하여 울고 지내더니 산에 접동새와 나와는 그 울고 지내는 처지가 비슷합니다”라고 표현했다. 접동새는 고전시가뿐 아니라 현대 시에서도 자규, 소쩍새, 귀촉도, 두견새 등과 같은 이미지로 등장된다. 이들이 밤새워 우는 소리가 너무도 애절하고 깊어 한(恨)과 고독, 그리움의 상징물이 되어 왔다.

 

왜 접동새처럼 밤을 새워 한을 달래며 울고 있는가? 그것은 “아니시며 거츠르신 아으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아시리이다” 다시 말해서 ‘역모에 가담했다는 나에 대한 참소가 옳지 않으며, 그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아아 답답합니다. 오직 지는 새벽달과 새벽 별만이 저의 결백과 충정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저의 이 결백과 충심을 모르고 왜 아직도 부르지 않습니까?’라는 탄식에서 알 수 있다. 일종의 원망이기도 하다. 그러니 접동새처럼 밤새워 울며 한과 고독을 달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敍)인 5〜10행에서 시인은 자신의 결백을 애써 밝히며 호소하고 있다. “넉시라도 님은 녀져라 아으”(넋이라도 임을 함께 모시고 싶어라. 아아--) ‘몸은 비록 떨어져 있으나 영혼만은 임과 함께 있으며 임을 모시고 싶다’는 신하로서의 애절한 충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결백을 호소하고 있다. 

 

어떻게 결백을 호소하고 있는가? “벼기시더니 뉘러시니잇가(내 죄를 우기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임의 뜻을 어기고 내 죄를 우기며 고하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저 자신이었습니까? 아니면 간신배들이었습니까? 저는 “과(過)도 허믈도 천만(千萬) 업소이다(저는 過失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힛 마러신뎌(뭇 사람들이 참소하던 말입니다.) 그것은 다 거짓이오며 임께서 죄 없는 몸이라고 용서하시어 다시 부른다고 하여 그런 줄 알았더니 말짱한 말씀(거짓말)이었습니까? 슬프고 슬픕니다. 니미 나 마 니시니잇가(임께서 벌써 나를 잊으셨습니까) 라며 원망과 탄식으로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 있다. 죄를 따져 보자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 11행의 결(決)에서는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맙소서 임이시어, 내 사연을 들으시고 다시 사랑하소서)”라며 다시 임의 곁으로 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담아 불러줄 것을 애원하고 있다. 

 

어쨌든 《정과정곡》은 뒷날 임금을 그리워하는 충심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그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노래로 널리 불려 왔으며 다양한 형태로 리메이크 되었다고 보여 진다. 고려말 익제 이제현도 이 시를 한시로 다음과 같이 리메이크했다고 전한다. 

 

億君無日不霑衣(억군무일부점의) - 임 그리워 적신 소매 마를 날이 없으니 

政似春山蜀子規(정사춘사족자규) - 두메 산골에 우는 접동새 내 벗이 아닌가 

爲是爲非人莫問(위시위비인막문) - 시시비비를 묻지를 마소 

只應殘月曉星知(지응잔월효성지) - 조각달과 새벽달이 굽어살펴 알리라. 

     -고려사』「악지(樂誌)(배규범 외1, 외국인을 위한 한국 고전 문학사,도서출판 하우)-

 

정서의 정과정곡이나 이제현의 한시에도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억울함이 담겨 있지만, 나의 스승에 대한 그리움에는 나의 무심함만 가득 담겨 있다. 올해 참외를 먹으면서 유독 그때 그 선생님이 생각나고 그리운 것은 나의 내면에 깊이 간직된 존경심 때문이리라. 학창 시절 나의 소중한 추억의 한 장면이 참외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분을 그저 책갈피에 끼워진 나뭇잎처럼 오랜 세월 잊고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럽고 원망스럽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너무 연로하셔서 긴 숨을 연명하시느라 고생하시지는 않을까? 아니면 넋이 되어 어느 하늘 아래 계실까? 나의 가슴에 깊이 간직된 소중한 스승을 조용히 불러본다. “님이시여, 님이시여, 내 사연을 들으시고 소식 주소서” 그리고 스승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이지만,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가르치기 참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세상이지만, 아이들의 가슴에 존경하는 스승 한 분이 별처럼 빛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이 별을 찾듯 존경하는 스승도 함께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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