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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민간인》, 지금도 알 수 없는 그 깊이

이상호 | 입력 : 2021/01/20 [13:13]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대표] 새해 벽두부터 내린 눈은 세상 덮기를 반복했다. 지저분한 것도 덮고 깨끗한 것도 덮고 자라나는 것도 덮고 죽은 것도 덮었다. 진실도 덮고 거짓도 덮었다. 눈이 덮어버린 세상은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세상을 침묵하게 했다. 눈은 침묵의 언어로 무수한 말을 하고 있었다. 세상이 평화로웠다. 그러나 해가 뜨면서 눈에 가려졌던 것들이 원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은 그렇게 눈이 세상을 덮고 해가 세상을 드러나게 하는 것처럼 숨김과 드러냄의 은폐 게임을 반복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인간사에서는 가려진 것들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드러났다고 해도 뭐가 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리고 은폐된 진실을 찾아 세상에 밝히기까지는 수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고 지독한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어떨 때는 그 진실이 영원히 묻히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과 행위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까닭이다.

 

지난해 9월 서해상에서 근무 중이던 공무원이 실종되어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사건에 대한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고 정부에서는 밝히고자 하는 노력도 부족한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유족들은 가슴이 타들어 간다. 잘못하면 그 후손은 월북자 자손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들을 진실의 문으로 안내할 햇빛은 언제 비칠까? 

 

전쟁 광기에 독한 말만 쏟아내던 김정은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으로 순한 양으로 변하는가 했더니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다시 늑대의 기질로 되돌아간 것 같다. 작년 6월에는 우리 돈을 들인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탄으로 폭파하였다. 통일부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피해액을 102억으로 추산하였지만, 우리 정부는 딱히 뭐라 하지도 못했다. 

 

올해 열린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보유국 지위로 적대 세력 위협이 종식될 때까지 군사적 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며 “핵 선제 보복 타격 능력을 고도화하기 위해 1만 5000km 사정권 표적에 대한 명중률을 높이겠다.”면서 “핵잠수함-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핵무기 개발과 군사력 증강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남북이 평화를 약속하며 군사분계선에 있는 초소까지 철거한 것은 한낱 “평화의 쑈”였을까? 남북대화와 핵 없는 한반도를 천명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말은 이제 박물관에나 보관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핵 없는 한반도를 말하면서 평화와 화합, 대화를 위해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기자회견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굳게 믿는다”고 했다.

 

우린 북한 김정은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속내도 알 수가 없다. 분단 70년을 이어온 지금까지 북한 정권의 속내는 더욱 알 수 없다.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진정으로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고 통일된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상대로 본다면 그들에 대하여 깊이 그리고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 아닐까? 

 

우리 정부나 김정은의 속내나 그 깊이를 민간인들은 정말 알 길이 없다. 김종삼의 시 《민간인(民間人)》을 읽으며 그 알 수 없이 깊은 아픔을 생각해본다.

 

민간인(民間人)

 

- 김종삼(1921〜1984)-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 해주(海州)의 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 용당포(浦)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트린 영아(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 이문재 엮음 『김종삼 시선』,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4-

 

김종삼 시인이 1971년 [현대 시학]에서 작품상을 받게 한 시이다. 분단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슴을 조였는가? 이 시는 분단과 6.25 전쟁의 비극을 몸소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전쟁의 포화와 같은 비극적 현상은 전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제목의 ‘민간인’이란 말은 공무원이나 군인 등과 차별화되는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그런데 시에서는 그 보통 사람인 민간인에게 일어난 일이 민족의 아픔이 되었다. 분단과 전쟁은 국가적인 일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민간인에게는 죽고 사는 처참한 일이 된다. 그리고 그 사건 속에 숨겨진 일들은 오랜 세월 민간인으로서는 밝혀낼 수 없는 비밀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총 2연으로 이루어진 시는 제1연에서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을 제시하고 제2연에서는 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 시간과 공간은 목숨이 위태로운 매우 긴박한 시간과 공간이다. 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순간에 일어난 사건을 간결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1947년 봄, 심야이다. 

 

여기서 봄이란 계절과 심야란 시간에 주목해 보면 1947년 봄은 북한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주를 처단하고 토지를 몰수하고 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내 집과 내 토지를 가지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씨를 뿌리고자 했으나 내 땅에 씨를 뿌릴 수가 없었다. 이를 못 이긴 사람들은 고향과 재산을 두고 이남으로 향했다. 감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잘못 걸리면 반동분자로 처형을 당한다. 그러니 심야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공산 정권을 피해 한밤중에 남쪽으로 피난을 해 왔다. 피난 할 수 있는 길은 바닷길밖에 없다. 육로는 이미 통제되어 거의 불가능했다. 월남을 결심한 사람들은 가족을 데리고 황해도 해주의 어느 나루에서 이남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 그 일행에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어둠은 짙게 깔렸다. 북한군 순시선이 오고 간다. 발각되면 현장에서 총살되거나 다시 끌려가 죽거나 온갖 고초를 당한다. 모두가 숨을 죽여야 하고 은밀하게 행동해야 한다.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갔다. 그런데 황해도 해주 앞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 용당포(浦)쯤 왔을까? 함께 오던 어느 가족의 젖먹이 어린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죽음을 부르는 소리였다. 죽음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다. 

 

어찌해야 할까? 아이의 부모에게 천벌 같은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부모는 아이를 황해도 해주 앞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 용당포(浦) 바닷물에 내 던졌다. 그리고 울음조차 내지 못하고 가슴만 쥐어뜯었다. 바다에는 아이는 간 곳 없고 검은 파도만 넘실대는데, 부모는 넋을 잃고 사공에게 자신을 맡겼을 뿐이리라. 그 장소, 용당포는 시의 절정을 이루는 한 맺힌 비정하고 비극적인 사건의 발생 장소이다. 

 

시는 마지막 행의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에 집중된다. 피난 온 가족들은 이남 어디에 터를 잡고 스무 몇 해가 지나도록 살아오고 있다. 그러나 그 1947년의 봄, 심야에 용당포에서 있었던 일은 잊을 수가 없다. 1947년 봄과 용당포는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강력한 트라우마가 되었고, 상처의 피는 지금도 흐른다. 상처는 용당포 수심(水深)처럼 깊이 가슴에 수심(愁心)으로 남아 세월과 함께 깊어간다.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는 단순한 숫자상의 시간이 아니다. 스무 해가 아니라 100해가 지나도 생존하고 있는 한 잊지 못할 일이다.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는 것은 그 용당포의 바다 깊이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지만, 시에서의 용당포의 수심(水深)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의 깊이이며 그 깊이가 너무나 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에 깃든 상처는 황해도 해주 운율 출신이지만 일본 유학, 분단, 6.25와 피난 생활로 겪은 고통, 그리고 잃어버린 사람과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평생 술과 음악을 벗 삼아 살았던 시인의 가슴 깊이 새겨진 상처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예로부터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아이를 바닷물에 던진 어머니는 죄책감을 가슴에 안고 밤마다 가슴을 움켜 뜯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 일은 단순한 그 한 사건만 아니라 당시 월남한 수많은 사람이 자녀를 잃고 아내를 잃고 부모를 잃었던 사건의 대명사이다. 피난대열에서 살기 위해, 함께 있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부모가 자식의 손을 놓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며, 피난대열의 아비규환에서 뿔뿔이 흩어지고, 서로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일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여 눈물을 흘리게 한 영화 <국제시장>은 그 아비규환을 잘 보여주었다. 지금도 1983년 이산가족찾기 때 설운도가 불렀던 노래 [잃어버린 30년]은 눈시울을 젖게 만든다. 

 

다시 시의 ‘지금도 알 수 없는 그 수심(水深)’으로 돌아가 보자. 그 수심은 단순한 물리적인 수심이 아니다. 자식을 바닷물에 던진 부모의 곪아 터진 ‘상처 깊은 수심(愁心)’이며, 민족 분단이 초래한 비극의 깊이이다. 나아가 지금도 알 수 없는 북한 정권의 숨겨진 속내의 깊이이기도 하다. 아이의 시신을 찾고 위령제라도 지내려면 수심을 알아야 한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의 깊이를 알아야 한다, 남북문제를 풀려면 북한 정권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린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알려고 하고 있는가? 

 

우린 아직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의 깊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직 분단이 준 민족적 상처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한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계산으로 이러쿵저러쿵 말하지만,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용당포’에 아이를 던진 《민간인》들의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상처는 더더욱 모른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정치적 계산으로 때로는 그 상처의 깊이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 가운데 연평도 포격, 천안함 피격 등과 같은 사건은 계속 일어났고, 서해상에서 업무 중이던 공무원의 북한군에 의한 피살과 같은 상처도 계속된다. 그리고 그 진실은 묻히고 상처만 깊게 남는다. 

 

늘 입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고 떠드는 정치인들의 진정성은 어디까지일까?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이 6.25 전쟁통에 《민간인》으로 부산에 피난 가서 겪었던 다음 이야기는 지금도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할 일 없이 쏘아 다니다가 어느 날 ‘정치가들을 만나면 무슨 신통한 새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겠지’하여 민주당 사무실에 들렀다. 7월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전쟁터에서는 하루에도 무수한 젊은 목숨들이 쓰러져가고 있는데,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웃통을 벗고 맥주를 마시면서 전쟁은 남의 일인 듯 한가하게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 (정주영 『이 땅에 태어나서』, 2020. 솔, 60쪽)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그 상처는 《민간인》 하나만의 상처가 아니다. 이 땅 남북한 전체에 사는 《민간인》의 상처다.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는 상처의 깊이와 정도를 알아야 한다. 《민간인》의 상처만 아니라 용당포 바다보다 깊게 감춰진 북한 정권의 속내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 아닐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문제의 원인과 정도(깊이와 넓이)를 알아야 한다. 상대와 갈등을 겪고 있을 때는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아야 그에 맞는 대응책이 나오고 상대를 평화의 식탁으로 끌어 올 수 있다. 손자병법(지형편)에서도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승리는 위태롭지 않으며 하늘을 알고 땅을 알면 승리는 곧 올 것이다(知彼知己, 勝乃不殆, 地天知地, 勝乃可全)”고 했다. 

 

아직도 《민간인》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고 깊이도 모르는데 서해 공무원 피살, 천안함 피격 같은 상처는 계속 생겨난다. 앞으로 또 얼마나 생겨날까? 그런데 안타까워라. 정말 아직도 《민간인》들은 그 상처의 깊이와 상처에 숨은 비밀의 깊이도 알 수 없는데, 핵 무장을 천명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다는 대통령의 속내도 알 수 없고, 북한 정권의 음흉한 그 깊은 속내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알려고 하면 ‘특등 머저리’ ‘기괴한 족족’이 될까 두려운 걸까? 정말 그 깊이는 얼마나 될까?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민간인》들은 지금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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