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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 삶과 죽음을 성찰한다.

이상호 | 입력 : 2021/02/18 [14:38]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천안 아산 경실련공동대표=이상호] 나의 이번 설 연휴는 거의 방콕이었다. 아이들도 한꺼번에 오지 못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라는 지침은 가족 간의 정 나눔의 시간도 앗아갔다. 부모님과 윗 선조의 산소에도 예전처럼 다녀오지 못했다. 선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보지 않으면 멀어진다는 속담이 현실이 될까 두렵다. 

 

그래도 설날을 맞으면서 가까운 공원묘지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는 다녀왔다. 코로나 19 때문에 나는 설 전날에 다녀왔고 아이들은 설 다음 날 다녀왔다. 설날 차례를 지낸 후 가족이 함께 다녀오던 예전과는 반대였다. 

 

부모님께 참배할 때는 생전의 음성이 늘 들리는 듯했다. 평소의 당부도 떠올렸다. 부모님 산소에 가기까지 다른 이들의 무덤 사이도 걸어야 한다. 수많은 무덤이 각자의 사연을 지닌 채 침묵으로 누워있다. 저마다의 묘비에 이름을 새겨져 있다. 어떤 이는 현고학생(顯考學生), 어떤 이는 00 권사, 어떤 이는 목사, 또 어떤 이는 보살, 그런 묘비명에서도 가족들과 무덤 당사자의 삶의 흔적이 풍긴다. 멀리 보이는 어떤 무덤은 묘비가 우람하다. 그러나 묘지 겉을 아무리 크게 만들어놨어도 몸이 묻힌 자리는 2평도 되지 않는다. 외관만 화려할 뿐이다. 죽은 이들은 말을 하지 못한다. 우린 그들의 말을 상상하고 느낄 뿐이다.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다툼을 벌일까? 어차피 죽으면 2평도 되지 않는 땅속에 들어가 흙이 되어갈 걸, 어떤 이는 한 줌의 재가되어 A4용지 한 장 크기의 상자에 넣어지거나, 이름 모를 땅에 뿌려지거나, 흘러가는 물결이 되고 말걸. 집에 돌아와 전에 읽었던 시집『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류시화 엮음, 열린원)을 꺼내 임옥당의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를 읽었다. 시는 삶과 죽음을 성찰하라고 했다.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 

 

                                                                                  임옥당 

 

무덤들 사이를 거닐면서 

하나씩 묘비명을 읽어본다.

 

한두 구절이지만 

주의 깊게 읽으면 많은 얘기가 숨어 있다

 

그들이 염려한 것이나

투쟁한 것이나 성취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짜로 줄어들었다.

 

살아 있을 적에는

지위와 재물이 그들을 갈라 놓았어도 

죽고 나니 

이곳에 나란히 누워 있다.

 

죽은 자들이 나의 참된 스승이다. 

그들은 영원한 침묵으로 나를 가르친다. 

죽음을 통해 더욱 생생해진 그들의 존재가 

내 마음을 씻어 준다. 

 

홀연히 나는

내 목숨이 어느 순간에 끝날 것을 본다. 

내가 죽음과 그렇게 가까운 것을 보는 순간 

즉시로 나는 내 생 안에서 자유로워진다.

 

남하고 다투거나 그들을 비평할 필요가 무엇인가?

 

류시화 엮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열린원, 2005, 44〜45쪽) 

 

 

이 시를 읽으며 가장 아쉬운 것은 지은이인 林鈺堂(임옥당)이란 분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알고 싶어도 알 길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죽음은 인간을 가장 평등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재물이 많고 권력이 강했으며, 지위가 높았어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자손이 붙잡으려 해도 죽음은 그들을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데려간다. 현세에서의 죽음은 슬픔이며 육체의 사라짐이다. 그리고 한번 죽어 땅속으로 들어가거나 한 줌의 재가 되면 다시는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오지 못한다. 그토록 많이 하던 말도 다시는 못하고, 그토록 맛나게 먹던 음식도 먹지 못한다. 누구나 평등하게 흙 속으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사람들의 현실 기억에서 멀어져 간다. 

 

시는 제1연에서 “무덤들 사이를 거닐면서/하나씩 묘비명을 읽어본다./한두 구절이지만/주의 깊게 읽으면 많은 얘기가 숨어 있다”고 시작한다. 그렇다. 무덤들 사이를 거닐다 보면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들려온다기보다는 내가 읽어낸다. 앞에서 말했듯이 상당수의 묘비명에는 학생부군, 집사, 권사, 목사, 보살 등의 말이 들어 있다. 우린 그것을 통해 무덤의 주인과 남은 가족들의 삶에서의 정신적인 흔적을 느낀다. 또 어떤 이들은 다른 것을 기록하기도 하고 어떤 열사의 묘비명에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남은 자들의 다짐이 새겨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묘비명에는 많은 것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죽은자가 누구인지와 죽은날짜와 자손들의 이름이 새겨질 정도이다. 그러나 특이하게 어떤 이의 무덤에는 죽은 이의 평소 지향이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묘비에는 상당수가 그의 관직이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전통사회가 관료 지향적인 명분 사회였음을 말해준다. 드물지만 지금도 그런 무덤이 있다. 지금도 어떤 묘비에는 그의 평소 지위와 업적이 구구절절 새겨져 있다. 

 

옛날도 성현들은 자신의 묘와 묘비를 검소하게 꾸밀 것을 후손에게 유언하였다. 유명한 토정 이지함 선생의 묘소는 충남 보령 주포에 있다. 오래전에 그곳에 갔을 때 그분의 묘소는 초라하게 느낄 정도로 검소하게 서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묘비도 말 그대로 토정 선생 이공 지묘(土亭 先生 李公 之墓)였다. 그러나 지금은 후손들과 보령시가 그의 정신 계승과 지방 문화 전승의 차원에서 새롭게 조성하여 그와 그 가족 및 후손들의 묘를 모두 모아 14기의 묘를 만들고 토정 선생의 생전의 업적과 연표를 돌에 새겨 성역으로 조성해 놓았다. 그것은 당초 토정 선생의 뜻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퇴계 이황 선생에게 빠진 적이 있었다. 퇴계문집을 읽고 퇴계 관련 논문도 쓴 적이 있다. 안동의 도산서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퇴계 이황 선생의 묘소 역시 검소했다. 퇴계 선생은 후손들에게 자기가 죽은 후에 묘비에 퇴계 선생 이황 지묘(退溪 先生 李滉 之墓) 정도로 간략하게 기록하고 화려하게 하지 못하도록 당부하였다. 이 역시 지금은 문화재 계승의 차원과 후손들에 의해 상황은 달라졌다. 

 

세계적으로 회자되는 묘비명 중에 유명한 철학자인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묘비명이 있다. 그의 묘비에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이 글은 그의 유명한 저서 『실천이성비판』 말미에 있는 글귀이다. 칸트는 평생토록 인간 본성과 도덕률, 감성과 이성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그의 유명한 3대 저서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이다. 대학 시절부터 칸트의 3대 저서를 읽기 위해 수많은 밤을 새우고 갈등하며 수없이 내팽개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모든 서양 철학은 칸트라는 거대한 호수에 들어왔다가 다시 흘러나왔다고 할 정도로 그의 학문적 영향력은 컸다. 

 

나의 묘비에 무엇을 어떻게 기록하게 할까? 나와 나의 부모님의 무덤을 어떻게 조성할까? 만약 그것이 명확하게 있다면 그는 정체성과 지향점이 분명한 사람일지 모른다. 만약 너무 거창하고 화려하게 꾸미려 한다면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는 오만한 자일 수 있다. 지나치게 웅장하게 하거나 지위나 업적을 구구절절 기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제2연에서 무덤을 내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이 염려한 것이나/투쟁한 것이나 성취한 모든 것들이/결국에는 태어난 날과/죽은 날짜로 줄어들었다./살아 있을 적에는/지위와 재물이 그들을 갈라 놓았어도/죽고 나니/이곳에 나란히 누워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생전에 아무리 큰 성취를 하였어도 묘비명에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 그리고 죽은 자의 이름으로 압축되어 있다. 높은 지위와 많은 업적이 있어 봐야 몇 줄의 글귀일 뿐이다. 사람을 갈라놓았던 그 높은 지위와 그 많던 재물은 그 곁에 없다. 가난했던 자나 부자였던 자나, 높았던 자나 낮았던 자나 땅속 작은 공간에 누워있다. 그 안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는지 그대로 있는지 알 수 없다. 만약 그대로 있다면 그는 불행한 자로 취급된다. 흙 속으로 사라져야 복된 주검이 된다. 

 

그런 무덤들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그래서 시인은 제3연에서 “죽은 자들이 나의 참된 스승이다. 그들은 영원한 침묵으로 나를 가르친다. 죽음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그들의 존재가 내 마음을 씻어 준다.”고 말한다. 죽음은 죽음을 맞이하는 자에게는 지난 삶을 성찰하게 하고 용서하고 내려놓게 한다. 임종 직전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남은 자에게 용서와 화해를 가르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평화로운 순간’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 죽음의 성찰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정한 화해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무덤과 죽음을 다시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다. 옛날 사람들은 대체로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적 입장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죽어도 영혼은 남아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몸은 비록 죽어 사라졌지만, 영혼은 남아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은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기도 했다. 남은 자들도 자기의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선조의 무덤을 화려하게 꾸며 그의 영혼의 힘을 이용하려 했다. 그래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고대로부터 이어져 오는 왕릉 등은 크고 화려하다. 그 안에는 부장품도 많다. 북한 김일성 부자의 무덤도 그 한 유형에 해당한다. 그러나 죽은 자는 다시 일어나 말하지 않으며 다만 후세가 그것을 느끼고 이용할 뿐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정신(영혼)과 육체라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분명히 인간은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대해서는 아직 미스터리다. 여기에는 두 가지 입장이 대표적이다. 하나는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적 입장이다. 정신과 육체는 분리되어 있으며 정신은 육체라는 물질을 빌려 작용하는 영생의 것이다. 그리고 정신과 육체는 서로 영향을 주는 상호작용의 존재이다. 육체는 아주 정교한 세포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이다. 죽음은 그 정교한 세포의 파괴와 소멸이다. 죽은 육체가 썩어 없어지는 것도 세포의 소멸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은 세포의 파괴와 소멸을 겪으면서 죽는다. 이원론적 입장에서는 육체가 죽으면 정신은 육체를 떠나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존재한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영혼의 영구적 존재를 현상적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은 그것을 믿는다. 특히 종교적인 신념은 그 믿음이 강하다. 이원론적인 입장에서의 정신은 육체의 소멸과 동시에 저세상이란 곳으로 간다. 그리고 현세에서의 삶의 성실성에 따라 저세상에서의 삶이 결정된다. 그것을 종교적으로는 천국과 지옥 등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영혼 불멸설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며, 인간을 겸허하게 하기도 한다. 

 

정신과 육체의 일원론적 입장은 물리주의적 입장이다, 인간은 아주 정교한 세포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세포들의 정교한 조합으로 정신적용이 일어난다는 견해이다. 인간은 아직 인간을 이루는 그 세포들의 정교한 조합에 대해 확실하게 밝히지 못했을 뿐이다. 아마 영구히 밝혀내지 못할 수도 있다. 죽음은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육체를 이루는 세포들의 파괴와 소멸이다. 일원론적 입장에서 죽음은 육체를 이루는 세포의 파괴와 소멸로 정신 작용의 파괴와 소멸도 초래된다. 정신 작용은 육체의 소멸과 동시에 소멸된다. 우리가 느끼는 죽은 자의 영혼은 그 영혼이 존재하여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가 생존 시에 하였던 행위와 업적을 통해 성찰함으로써 그 영혼의 작용을 느낄 뿐이다. 

 

죽음은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이든 일원론이든 살아 있는 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은 남은 자들의 성찰을 통해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은 죽은 후에 남은 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그래서 죽음을 성찰하는 자는 죽음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경건하게 살아가게 된다. 

 

모든 생명체의 탄생은 죽음으로 가는 길의 출발이다. 삶의 최종 목표지점은 죽음이다. 그래서 살아가고 활동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겪는 경험이며 활동이다. 그것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신의 섭리이며 자연의 이치이다. 다만 그 죽음이 언제 어떻게 다가오며, 죽음을 언제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그리고 살아 있을 때 삶의 경험과 행적을 어떻게 남기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뿐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원한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탐욕의 신이었다. 크로노스는 모든 것을 영원히 가지려 하였고, 자식이 자기의 항구적인 권력을 침해할까 두려워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삼켜버렸다. 슬픔과 분노에 빠진 아내 레아는 아기 옷에다가 돌을 넣어 두었는데 급한 크로노스는 그 돌을 삼켜버렸다. 그렇게 해서 레아가 살려낸 아이가 제우스였다. 제우스는 성장하여 포악한 탐욕의 신인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최고의 신이 되었다. 영원과 탐욕의 신 크로노스는 최후를 맞이하였다. 크로노스와 같은 지나친 탐욕은 폭력을 낳고 타인에게 슬픔과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현상 세계에서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죽음을 통해 소멸한다. 그래서 삶은 겸허해야 하며 죽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만약 죽음의 성찰이 없다면, 인간은 크로노스처럼 한없이 오만해지고, 내려놓을 줄 모르고, 베풀 줄도 모르며, 모든 것을 움켜쥐려고만 할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오만하며 용서하지도 못하고 움켜쥐기만 하고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 순간에도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죽음에 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서 죽음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재물과 권력, 명예를 영구히 움켜쥐고 지키기 위해 두려움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크로노스처럼 지속적인 폭력과 악행을 자행할 것이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악행도 어느 날 끝났듯이 그런 사람의 최후는 매우 초라하게 끝난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초라해진다. 

 

유명한 셰익스피어(Willam Shakespeare, 1564~1616)의 비극 『리어왕』에서 마음에 사랑은 비어있고 권력과 부만 가득찼던 리어왕은 80세의 노년에 남은 자기 인생을 극진히 대접할 딸에게 왕국을 물려주고자 한다. 그는 세 딸의 충성심을 시험한다. 탐욕을 가진 첫째 딸 고너릴과 둘째 딸 리간은 감언이설로 아버지를 설득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가진 막내딸 코딜리아는 침묵한다. 결국, 리어왕은 진실한 사랑을 가진 코딜리라를 오해하고 탐욕을 가진 딸들의 속임수에 눈이 멀어 저울질하다가 고너릴과 리간의 권력 투쟁에 휘말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진실한 사랑을 가진 코딜리아의 품에서 후회하며 비참하게 죽는다. 어떤 경로로든 노년으로 갈수록 움켜쥐려는 탐욕은 자기 자신에게 죄악이 되며 후손들에겐 분열과 투쟁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노년과 죽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성찰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리어왕은 사랑의 충만과 진실한 사랑은 화려한 말과 행위에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노년과 죽음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손을 펴고 내려놓아야 함도 가르쳐 준다. 그렇게 될 때 죽음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겸허를 가르쳐 화해와 용서와 동행의 역사를 잇게 한다. 

 

그래서 시는 다시 말한다. “홀연히 나는/내 목숨이 어느 순간에 끝날 것을 본다./내가 죽음과 그렇게 가까운 것을 보는 순간/즉시로 나는 내 생 안에서 자유로워진다./남하고 다투거나 그들을 비평할 필요가 무엇인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길 원한다면 죽음으로 향하는 길목인 일상에서 베풀고 놓으며, 용서하고 화해하며, 다투거나 비평할 일들을 삼가야 한다. 무덤들을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 삶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더 값진 일이다. 무덤들 사이를 걸어보자. 무덤들이 삶에 대해 수많은 말을 걸어오고 있을 것이다.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것은 의미 있는 삶을 향한 지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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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空谷 2021/02/19 [02:12] 수정 | 삭제
  • 퇴계선생 묘비에는 '退陶眞城李公之墓'라고 큰 글자로 앞에 세기고, 작은 글씨로 퇴게선생 自銘과 奇高峯이 지은 묘비문이 돌아가며 세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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