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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 《남으로 창을 내겠소》 그리고 웃지요

이상호 | 입력 : 2021/10/18 [12:21]

 

▲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     ©뉴스파고

 

[이상호=천안아산경실련 대표] 20여 년 전에 퇴직 후를 위해 밭을 장만했다. 퇴직 전에는 대충 농사를 짓다가 퇴직 후에는 소일 삼아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짓다 보니 때로는 소일을 넘어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래도 수확의 보람은 크다. 

 

어떤 사람들은 “사 먹는 게 싸다”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농사를 짓다 보니 농사는 먹는 것에 대한 경제적 가치 이상임을 늘 발견한다. 생산한 것을 친척, 친지들과 나누어 먹고 자녀들에게 늘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는 즐거움, 가끔은 밭에서 친척 혹은 친구들과 고기를 구우며 즐기는 일은 코로나 19시대에 캠핑 이상의 가치를 발휘한다. 

 

가을이 다가오면서 바빠졌다. 대부분의 농산물은 가을이 들면서 수확해야 한다. 수확한 자리에는 내년에 먹을 양파와 마늘 등을 심는다. 그러다 보면 심어 놓은 것 모두를 거두어야 할 때가 있다. 아직 주렁주렁 달린 고추도 걷어내야 하고 싱싱하게 자란 파도 뽑아내야 한다. 내가 다 먹지 못하니 아깝다. 고추는 지인들에게 따 가라고 해도 남는다. 파 등은 지인들과 나누어 먹어도 한계가 있다. 지인들과 나누어 먹는 것도 그냥 줄 수 없어 일일이 다듬어 배달하자면 부담이다. 그 부담은 내가 노동하는 부담이 아니라 가져다주면 꼭 무언가 되돌려 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어쩌다 작년보다 대파를 많이 심었다. 작년에는 아내가 대파 김치를 많이 담가 파김치를 치우는데 노고가 있었다. 아내는 아주 조금만 담그기로 했다. 그러니 파가 엄청 많이 남았다. 파를 모두 뽑아 다듬던 아내가 “다듬은 파를 아파트 현관에 놓고 필요한 사람들 가져가라고 하면 어떨까?”하고 제안했다. 나는 지체없이 '엄지 척'을 하면서 “굳 아이디어!”하고 둘이 열심히 파를 다듬었다. 그리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 쌓아 놓고 엘리베이터 입구와 안에 메모를 붙였다.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파는 직접 농사지은 파입니다. 필요하신 분은 부담 갖지 마시고 가져가세요”

 

이웃들이 파를 가져갈까? 궁금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살며시 문을 열어보았다. 반 이상이 소모되었다. 두 시간 반쯤 지났을 때 그러니까 주민들이 거의 퇴근하여 귀가했을 무렵에 파는 동이 났다. 내가 써 놓은 메모지 옆에는 메모가 하나 붙어 있었다. 그리고 작은 쇼핑백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정성 들여 농사지으신 파를 이렇게 나누시다니♡♡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갈증에 사이다 한잔을 깊게 들이마시는 기분이었다. 누가 뭐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아내는 보람찬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가끔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리고 이틀 후에는 풋고추를 한 상자 가득 따서 그렇게 갖다 놓았다. 밤 10시쯤 되어 모두 귀가했을 무렵 고추도 모두 없어졌다. 아내는 빈 상자를 들고 들어오면서 매우 행복해했다.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가 떠 올라 젊은 시절부터 읽던 시집을 꺼내 읽었다. 시는 아주 새로운 맛으로 내게 다가왔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1902〜1951)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김희보 편저 『한국의 명시』(종로서적, 1980)- 

 

옛날 집들은 거의 남향집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시골을 제외하고는 남향집을 찾기 쉽지 않다. 특히 아파트가 대부분인 도시의 주택은 남향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전통적으로 남향 주택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역시 남향 주택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함과 동시에 농촌의 소박한 삶의 풍경을 그리게 한다. 

 

총 3연으로 구성된 시는 함축성이 뛰어나다. 이런 시를 읽다 보면 나도 이런 시를 써 보고 싶다는 충동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시는 1934년 『문학』이라는 동인지에 실린 것으로 복잡한 세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소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그래서 시는 물질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이며 문명적이라기보다는 비문명적이다. 어쩌면 문명의 질곡 속에서 뒤엉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풍경일 수 있다. 

 

제 1연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마치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간절한 소망을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으로 들린다. 그리고 누구에겐가 말하고 있다. 그 대상이 누구일까? 아마 특정인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 아니 시인을 아는 모든 사람, 혹은 그냥 홀로 소망을 드러내는 독백인지 모른다. 어떻든 시인은 자기의 소망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실천의 결의를 다진다. 

 

시에서 말하는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바꾸어 말하면 남향으로 된 집을 짓고 살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대궐같이 우람한 집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집이다. 그리고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다. 농사지을 밭은 집 가까이 있거나 집에 붙어 있는 텃밭일 가능성이 크다. 시의 화자는 아주 작고 소박한 농촌 생활을 꿈꾸고 있다. 

 

다음 행의 “밭이 한참 갈이/괭이로 파고/호미론 김을 매지요”는 농사짓는 방법과 농사짓는 행위를 이야기하고 있다. 옛날에 논밭은 소를 이용해 쟁기로 간다. “밭이 한참 갈이”는 바로 그 모습이다. 소를 이용하여 한참이면 다 갈 수 있는 밭이니 규모가 작다. 특히 이어지는 “괭이로 파고/호미론 김을 매지요”에서 노동의 고단함보다는 노동의 낭만성이 풍기는 것을 보면 일이 그리 많지 않은 소박한 삶이다. 시의 화자는 그런 삶을 꿈꾸고 있다. 

 

그런 농촌의 풍경은 평화롭다. 제2연은 그런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에 농촌 풍경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 풍경을 그려 보자. 하늘에 구름이 둥둥 떠 간다. 떠가는 구름은 서로 뒤엉켜 바람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어떤 곳은 구름이 몰려 있고 어떤 곳은 흩어져 있다. 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구름도 이내 흩어져 어디론가 흘러간다. 자연스럽다. 평화롭다. 그러나 여기서 구름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세속적 욕망의 뒤엉킴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구름이 꼬인다는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 뒤엉킨 복잡한 삶 즉 세속적 욕망의 꼬임이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꼬인다”이다. 농촌에서 남으로 창을 낸 오두막을 짓고 햇빛에 검게 탄 얼굴로 농사를 짓는 한 시인에게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의 눈에 시인의 모습이 초라하게 보이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이렇게 살아. 도시에서 편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살지.” 그 말에는 도시 문명과 세속적 욕망의 꼬임이 담겨 있다. 그때 시인은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어이 일없어 난 이 삶이 아주 좋아” 여기서 “꼬인다”는 말은 유혹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에는 누가 와서 나를 꼬여 도시로 나가자고 해도 나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신념과 소박함이 담겨 있다. 

 

제2연 2행의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는 그 풍경의 극치를 이룬다. 구름이 떠 있는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지저귄다. 하늘만 아니다. 남으로 창이 난 집 앞마당과 뒤뜰에도 새들이 날아와 지저귄다. 주변의 산과 들판, 나무에도 새들이 사시사철 날아와 지저귄다. 그것은 자연이 주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음악이다. 도시의 극장에서 보고 듣는 오케스트라보다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 그 아름답고 풍성한 노래를 공짜로 들으려고 한다. 아니 공짜로 듣기로 마음먹었다. 이 “들으랴오”라는 말에도 그런 의지가 담겨 있다. 이 한 구절에서 우린 자연이 주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느끼게 된다. 

 

제2연 3행의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에서 시는 자연적 이미지에서 인간적 이미지로 비약한다. 인간적 나눔의 세계를 말한다. 소박한 농촌의 삶은 도시의 삶에 비해 나눔이 일상이 된 삶이다. 이것은 ‘우리 집에 와서 먹고 마시며 즐깁시다.’라는 나눔에 대한 소망의 선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강냉이가 익걸랑”은 강냉이 하나를 일컬음이 아니다. 나눌 수 있는 매개체이다. ‘감자를 캐걸랑’ ‘감을 따걸랑’ 등의 용어로 대치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강냉이는 이르면 8월이면 익는다. 8월은 바쁜 일손을 끝내고 더위를 식히며 휴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때는 일보다는 쉬면서 담소를 나누고 즐기자는 주문이기도 하다. 

 

모든 삶은 노동과 휴식의 조화 속에서 아름다워지고 균형이 유지된다. 노동이 있어야 먹을 것이 얻어지며 먹을 것이 있어야 휴식도 한층 배가 된다. 쉬는 시간에 차를 마시고 간식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휴식 시간에 비로소 삶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사람 관계가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노동은 휴식을 위한 에너지의 축적이며, 휴식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사람 관계를 심화․ 발전시키며 자기의 내적 충만을 구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제1연과 제2연의 관계는 매우 유기적이며 삶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가 담겨 있다. 

 

시에서 제1연과 제2연은 노동과 휴식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1연은 노동의 시간과 행위를 말하고 있다. 그 노동의 시간은 볕이 창으로 스며드는 봄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말속에는 실제로 집을 짓는데 남으로 창을 내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을 때 남으로 난 창을 활짝 열어 봄볕을 맞이하겠다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봄볕을 맞이하겠다는 것은 밭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어 가꾸겠다는 것이다. 그 행위는 곧 밭갈이와 씨 뿌리고 김매는 일이다. 시에서 말하는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의 순서는 농사짓는 시간적 흐름에 따른 노동행위를 말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순서는 우선 밭을 갈아야 한다. 그리고 괭이로 이랑을 만들고 씨를 뿌려 덮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호미로 돋아난 잡초를 매고 북을 돋우어 곡식들이 잘 자라도록 해야 한다.

 

제2연은 이제 그 힘든 노동의 시간이 끝나고 휴식의 시간이 왔다. 휴식은 여유와 유유자적을 선물하지만, 삶에 대한 회의와 성찰도 요구한다. 그때 ‘힘든 노동일 그만하고 도시로 가라’는 사람들의 유혹도 있다. 그러나 시인은 손사래를 치며 ‘일 없다’고 한다. 새 노래도 공짜로 들으며 자연과 함께 할 수 있고 전원적 낭만을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안분지족이다. 

 

휴식은 여유와 회의와 성찰을 주는 것만 아니라 나눔의 기회를 주면서 인간관계를 발전․ 심화시키고 삶의 리듬을 새롭게 제공한다. 그 리듬은 자기 삶의 내실화만 아니라 소박한 상생의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한다. 전통적인 농경문화(시골 문화)가 바로 그런 것을 제공하는 시공간이다. 그러니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서 자셔도 좋소”에는 그런 휴식과 관계성에 대한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삼라만상 즉 우주와 자연의 리듬이자 삶의 리듬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1연과 제2연은 노동과 휴식의 조화를 통해 우주(자연)와 삶(존재)의 조화를 느끼게 한다. 

 

그 우주와 삶의 조화에는 천(天)- 지(地) - 인(人)의 조화라는 근원적 관계가 설정된다. 시에서는 이 관계가 땅(밭) - 하늘(구름, 새)- 사람(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의 관계로 이어진다. 이 관계 속에서 인간의 노동과 휴식과 나눔의 행위가 돋보인다. 그리고 이 천(天)- 지(地) - 인(人)의 관계에는 사람이 중심에 서 있으며 사람을 위한 관계이다. 

 

제 4연의 “왜 사냐건 웃지요”는 이 시의 압권이다. 하이쿠를 연상하게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소박하며 힘든 농촌 생활을 비판한다. 거기에는 ‘왜 살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지’ 등의 물음이 깃들여 있다. 그 물음에 화자는 ‘그냥 웃는다’는 것이다. 그 웃음은 여느 웃음이 아니라 모든 욕망과 근심을 덜어낸 소박한 웃음이다. 만족과 행복이 깃든 웃음이다. 염화시중의 미소 같은 해탈의 웃음이랄까? 이 한 구절은 앞의 모든 시적 언어를 소화해 내며 압도한다. 남으로 낸 창문, 밭갈이와 괭이와 호미의 노동행위, 구름의 꼬임과 공짜로 듣는 새 노래, 강냉이를 먹는 나눔의 행위는 대상과 행위와 방법만 다를 뿐이지 사람들의 삶의 일상이다. 어떤 이는 도시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렇게 살고, 어떤 이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그렇게 사는 우리의 일상이다. 여기에는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의 물음이 내재 되어 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어떻게 사느냐’보다는 ‘왜 사느냐’에 집중하고 있다. ‘어떻게 사느냐’는 삶의 방법이지만, ‘왜 사느냐’는 삶의 이유 즉 존재의 이유이다. 그 존재의 이유를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한마디로 “웃지요”로 함축하였다. 그런 점에서 디오게네스적이기도 하다. 

 

이 시는 매우 인간 중심적이다. 우리가 자연을 벗 삼아 사는 것도 욕망을 버리고 자연에 단순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어 자연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 자연과 어울림은 당연히 인간과 어울림도 포함된다. 그래서 하늘과 땅은 인간 중심적인 소박한 삶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시적 화자는 그 공간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며 삶의 이유를 찾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해탈적인 웃음 즉 “왜 사냐건 웃지요”이다. 그 관계는 다음과 같은 삶의 존재 양식이다. 

 


시는 이렇게 존재의 본질적 문제까지 접근한다. ‘자식을 잘 키우려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에는 입신출세하려면 도시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에는 부와 권력(명예)이라는 입신출세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어쩌면 인류는 그 부와 권력(명예)을 위하여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문명의 발전은 인간을 더욱 인간적이게도 했지만, 수많은 삶의 모순을 양산해 내는 비인간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문제는 왜곡된 욕망의 지나친 추구 때문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출세를 위해 문명의 도시로 향한다. 그래서 농촌은 공동화되어 간다. 새들의 노래는 들리지만, 아이들의 울음과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시인이 살았던 1930년대로 그랬던 것 같다. 그때도 지금처럼 도시는 욕망과 출세의 상징, 농촌은 비움과 소박함의 상징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시인은 치열한 경쟁과 욕망의 소용돌이인 도시를 떠나 불편하지만 소박한 농촌 생활을 통해 유유자적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생활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비움과 나눔, 해탈의 철학이기도 하다. 시가 대화체로 구성된 것도 그런 사람 관계를 기본적으로 깔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자연과 농촌은 우리에게 먹거리와 소박한 삶과 나눔의 방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사색과 창조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1642~1727)은 164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영국 동부 울스토르프에서 예수처럼 불우하게 태어났다. 그는 태나기도 전에 부친은 사망하였고 태어난 뉴턴은 미숙아로 체격이 매우 작았다. 어쩌면 예수보다 더 불우한 탄생이었다. 뉴턴이 3세 때 어머니가 재혼하는 바람에 외갓집에서 자랐다. 사생아나 다름없었다. 농촌의 가난한 외가는 그의 유일한 성장 환경이었고 우주와 자연은 외로움을 달래는 벗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뉴턴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우주와 자연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일이었다. 재혼한 어머니가 뉴턴 곁으로 돌아온 것은 열 네 살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뉴턴에게 공부가 아니라 농사일을 시켰다. 뉴턴은 농사보다는 매사에 관찰과 생각에 빠졌다. 그런 뉴턴의 재능을 발견하고 어머니를 설득하여 학교에 보내게 한 것은 삼촌 제임스였다. 그 덕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들어가 고학으로 학업에 매진했다. 그러나 시대는 늘 평온하지 않았다.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한때 잠잠해졌던 흑사병은 1665년 런던을 다시 덮쳤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교회에 모여 기도에 매진했으나 그것은 더 큰 화를 불렀다.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거대한 런던은 유령의 도시로 변하고 대학들도 휴강했다. 면학에 불타던 뉴턴도 할 수 없이 고향인 울스토르프의 외가로 피신했다. 그는 늘 풀리지 않는 숙제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뉴턴은 답답하여 밖으로 나가 정원을 바라보며 생각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뚝 덜어졌다. 뉴턴의 의문과 숙제는 풀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과 우주는 문명의 도시보다 더 깊고 심오한 사색과 상상과 창조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자연과 우주는 늘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 자연과 우주를 잃어버리고 있다. 아니 문명의 편리함에 빠져 스스로 떠나려 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코로나 19라는 펜데믹을 겪고 있다. 유행병이 이토록 자주 인류를 습격하고 급속하게 세계를 강타하는 것도 자연을 배반한 인간의 지나친 욕망 때문인지 모른다. 흑사병이 닥쳤을 때 사람들이 밀폐된 공간인 교회로 모여 기도로 해결하겠다는 것도 사실은 신의 이름을 빙자한 인간의 지나친 욕망의 소산이었는지 모른다. 코로나 19 역시 인간이 자연과 동물의 삶의 영역을 침범하고 파괴하는 현대 문명의 귀결인지 모른다. 밀집된 도시화와 도를 넘어서는 밀집 접촉의 산물인지 모른다. 지금의 심각한 기후 위기 또한 그 산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린 늘 서로의 삶의 영역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우주 질서를 존중하며 사람과 자연, 사람과 동물의 공존의 길을 찾는 일일 것이다. 

 

첨단 문명의 시대에 도시를 버리고 농촌으로 가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배반이며 모순이다. 그러나 도시는 집이 모자라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갑갑할 정도로 몸을 부대껴야 하는데 농촌은 점점 공동화되어 가고 자연은 점점 파괴되고 방치되어 가는 현실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욕망을 스스로 제어할 줄 알 때 자본주의는 모순을 덜 양산하면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자연과 농촌은 도시 문명보다 인간에게 우주와 자연, 순수와 인간적 매력을 더 성숙시키고 감성과 사색을 안겨주는 공간이라 여긴다. 그리고 그것들은 정직하고 소박한 삶의 리듬을 우리에게 제공하리라 믿는다. 자연과 농촌을 잃어버린 미래 세대들의 마음은 더욱 척박해질지 모른다. 문명이 속도를 줄이자 문명의 방향을 생각해 보자.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읽으며 코로나 19가 세계를 지배한 현실에서보다 인간적 삶을 향한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물어본다. 문명의 질곡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끔은 휴식과 나눔과 성찰과 해탈을 꿈꾸기도 한다. 그래서 “왜 사냐건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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