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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천안시는 민간인 학살의 주범 조병옥·이범석 홍보책자 발행을 중지하라"

한광수 기자 | 입력 : 2021/12/07 [12:52]

▲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천안시는 민간인 학살의 주범 조병옥·이범석 홍보책자 발행을 중지하라"  © 뉴스파고


[뉴스파고=한광수 기자]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지회장 최기섭 이하 민문연)가 이번에는 천안시에서 계획하고 있는 홍보책자 발행 계획의 즉각중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문연은 7일 오전 10시 천안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21년 9월 15일 그날의 함성 조형물 내 조병옥 동상이 철거교체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또다시 조병옥 이범석을 '천안을 빛낸 인물'로 홍보책자 발행을 시도하고 있음이 확인됐다"면서 이같이 요구했다.

 

민문연은 이날 성명서에서 "조병옥은 1948년 4.3항쟁 당시 경무부장으로서 초토화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서북청년단과 민보단을 구성하여 민간인 학살을 추도한 책임자"라며, "당시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와 여성 등 제주도민 약 3만명이 재판도 없이 잔인하게 총칼에 희생됐다"고 밝혔다.

 

이어 "조병옥 경무부장은 직접 제주에 내려가빨갱이 사냥을 독려했으며, 일제 때 독립운동가를 잡으러 다녔던 친일파들을 다시 경찰로 등용해 반민특위의 해체를 이끌어내는 등 해방 이후 근현대역사 왜곡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범석은 이승만 정권 당시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으로서 제주 4.3과 여순사건의 책임자로, 히틀러를 추종한 군국주의자며 자신이 조직한 조선민족청년단을 이용해 쿠데타를 모의하는 등 결코 천안을 빛낸 인물로 적합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민문연을 그러면서 "조병옥 이범석의 홍보책자 발행으로 또다시 무책임하게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려는 천안시를 규탄하며 홍보책자 발행게획을 철회하라"고 천안시에 요구하면서 "홍보예산으로 책정된 4천만원의 삭감하라"고 천안시의회에 요구했다.

 

이와 관련 천안시사적관리과 관계자는 "아직 그분이 그렇게 어떤 것을 했다는 증명이 없다"면서 "확실하게 있다면 독립유공자에서 취소됐어야 하는데 아직 유지되고 있다. 당시에 경무부장을 했을 뿐이지 직접했는지는 잘 모른다. 아직 확인된 것이 없다."면서 의회에서 예산이 통과될 경우, 그때 가서 할지 않 할지를 판단해야 된다"고 말했다.

 

한편 보훈처에서 관리하는 공훈전사자료관에는 논란의 조병옥이 독립유공자 9972번으로 등재돼 있으며, 공훈록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돼 있다.

충남 천안(天安) 사람이다.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를 졸업하고 1914년 미국으로 건너가 안창호(安昌浩)가 주도한 흥사단(興士團)의 조직결성에 참여하였으며, 뉴욕 거주 동포들을 중심으로 한인회(韓人會)를 조직하고 총무를 맡아 독립운동의 진상을 미국에 알리는 등 외교활동에 힘썼다.

1925년 콜럼비아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이광수(李光洙) 등과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를 조직하는 한편 잠시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내기도 하였다. 또한 1925년 9월 백남운(白南雲)·백관수(白寬洙)·김준연(金俊淵)·안재홍(安在鴻) 등과 조선사정연구회(朝鮮事情硏究會)를 조직하고 동년 11월에는 신흥우(申興雨)·윤치호(尹致昊)·이상재(李商在) 등과 태평양문제연구회(太平洋問題硏究會)를 결성하여 민족운동을 펴나갔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의 결성에 참여하여 35명의 간사중 일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으며 1929년 신간회 복대표위원회에서 교육부장과 경성지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간회에서는 이에 호응하여 민중대회(民衆大會)를 개최할 것을 계획하고 이를 준비하던 중 그를 비롯한 주요 간부들이 일경에 붙잡혀 그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1932년 조선일보 전무 겸 영업국장을 맡아 민족언론의 육성에 힘썼으며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붙잡혀 2년간의 예심 끝에 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8·15 광복후에는 한민당(韓民黨)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경무부장(警務部長), 내무부장관, 민주당(民主黨) 대표 최고위원, 민의원(民議院) 의원 등을 역임하고 1960년 대통령선거에 입후보 중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날 성명서 발표 이후 질문에서 '조병옥이란 인물이 독립유공자로 등재돼 있는데, 제주4.3사건과 관련하여 등재취소를 보훈처 등 중앙기관에 요구한 적이 있느냐?'는 뉴스파고 기자의 질문에 최기섭 회장은 "아직은 그런 적이 없다. 향후 추진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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