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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세상 읽기】《오로지 듣고....》 행복하여라.

이상호 | 입력 : 2023/01/10 [21:40]

 

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 공동대표/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뉴스파고

 

[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대표, 소소감리더십연구소소장] 나는 문득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행복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그중에서도 인간은 어느 생명체보다 더 강하게 행복을 갈구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 행복에 대한 갈구가 어디를 향하고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행복의 갈구로 인해 자기를 수렁에 빠지게도 하고 자기를 천국으로 인도하게도 한다는 것을. 그래서 누가 뭐래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행복은 자주와 자족 속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행복은 마음이 가난한 자의 몫이라는 것을. 

 

평생 행복을 추구한 시인이 있다. 그는 어쩌면 어린 날 매우 불행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주적이지 못했으며 자족하지도 못했다. 그러기에 그는 자주와 자조를 찾아 그 가난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시를 쓰면서 살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다. 그의 시를 한 수 읽는다. 

 

오로지 듣고, 놀라면서 

은밀하여라, 네 가장 깊은 생명이여 

바람이 너에게 하고픈 말을 

자작나무 떨림보다도 더 빨리, 깨닫도록 하여라 

 

 

일단 침묵이 말을 시작하거든 

네 감각이 정복당하는 대로 하라 

모든 숨결에 몸을 맡겨 거역하지 마라 

숨결은 너를 살가워하며 흔들리라 

하여 그때는 내 영혼이여 넓어져라, 넓어져라, 

네 생명이 성취하듯이 

생각을 갖춘 것들의 위에 

나들이옷 마냥 너를 펼쳐라 

 

 

-릴케 <오로지 듣고...>의 전문-

 

‘장미의 시인’으로 알려진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평생 사랑과 행복을 꿈꾸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시들은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죽는 순간까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처럼 사랑과 행복은 갈망하는 만큼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사랑과 행복은 더 갈망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시인이 갈구하는 것은 조용하고 순결한 행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혼을 아름답게 닦으며 가장 깊은 생명이 추구하는 것을 빨리 깨닫기를 갈구하고 있다. 행복은 감각을 정복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정복당하는 대로 하는데 있다. 감각을 정복하는 일은 욕망에 빠져 무구한 향락을 추구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감각에 정복당하는 일은 가난한 마음에 도사린 겸허함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감각을 열어야 하며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감각의 숨결에 몸을 맡겨야 한다. 거역하는 일은 감각과 영혼을 거역하는 일이 되리라. 그렇게 될 때 숨결은 더욱 살가워지고 영혼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든 생명이 성취하고자 하는 세계, 바로 고귀한 영혼이 깃든 행복의 세계이리라. 이를 위하여 우린 나들이옷 마냥 늘 새롭게 단장하고 자신의 영혼과 감각을 펼쳐나가야 한다. 그런 가운데 행복은 싹트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린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릴케는 1857년 12월 4일 체코 프라하에서 칠삭둥이의 남자아이로 태어났다. 그에게는 누이가 있었는데 그가 태어나기 1년 전에 죽었다. 어머니는 딸아이의 죽음에 대한 상처가 매우 컸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릴케의 세례명을 마리아로 정하고 원피스를 입히고 인형을 가지고 놀게 했다. 그는 여자아이로 강요받으며 성장했다.

 

릴케의 아버지 요제프는 육군사관이 되기 위해 군인으로 출발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보헤미아의 철도회사 관리로 근무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소심하고 근면한 사람이었다. 어머니 소피아는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다. 그래서인지 매우 사치가 심했으며 충동적이고 허영심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면하고 소심한 아버지와 허영심 많고 사치한 어머니의 결혼 생활이 원만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둘은 릴케가 아홉 살 때 별거 생활을 하였다.

 

별거 생활 중에 아버지는 릴케를 육군사관으로 키우기 위해 잔크르 빼르텐의 육군실과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다시 바이스키르휀의 육군고등실과학교에 진학시켰다. 이렇게 릴케의 학창시절은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다르게 아버지에 의해 강요된 군사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이러한 릴케의 삶을 돌아보면 그의 탄생과 유년 시절, 학창 시절은 불행하였다. 그는 결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거나 자기다움을 추구하지도 못하였다. 그는 늘 굴레 속에 갇혀 있으면서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것을 분노의 행동이나 일탈로 해결하지 않았다. 고독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기의 이상 세계를 추구해 갔다. 그래서일까? 그가 지난날을 회고하며 쓴 글에는 자신은 마치 도스또엡스끼가 「죽음의 기록」 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괴로운 생활이었다고 하였다. 그의 유년기와 학창 시절은 자주와 자족을 상실한 괴로운 시절이었다. 

 

1891년 육군사관학교를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중퇴하고 고향인 프라하로 돌아가 린쯔의 상과대학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다시 그만두고 숙모네 집에서 프라하 국립고등학교 사택 교수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사랑을 하게 되고 시를 쓰고 산문을 쓰면서 괴테, 하이네 같은 명사들의 글을 읽으며 마음과 사상을 키워갔다. 

 

창작의 열정에 불타던 릴케는 열네 살 연상의 유부녀 루 살로메와 사랑에 빠졌다. 루 살로메는 니체와 프로이드의 연인으로도 알려진 당시의 이름난 저술가였다. 그녀는 릴케의 문학적 감수성에 매료되어 릴케의 이름을 ‘라이너’라고 지어주고 작품활동을 독려했다. 릴케는 파리에서 당시의 조각가 로댕과 친하게 지내면서 조각과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을 동원하여 정제된 언어의 서정시를 발표했다.

  

릴케의 정제된 서정시의 근원은 루 살로메와의 사랑이었다. 릴케는 편지 한 장을 써도 받는 사람의 정서를 생각해서 편지지 색깔까지 다르게 하였다고 한다. 아마 그것은 소심함을 넘어 상대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와 존중이었는지 모른다. 릴케는 행복한 사랑을 위해 온 정성을 바쳤다. 1903년에는 로댕의 집에 머물면서 로댕의 전기인 《로댕론》을 쓰기도 했다. 그 후 그는 수필을 썼으며 대표적인 소설 《말테의 수기》를 써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 이후로 그는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말년의 릴케가 몸이 허약해져 뮈조트 성에서 지내고 있던 어느 날 그의 작품 애독자인 이집트 여인 니메트가 찾아왔다. 릴케는 그녀에게 자신이 애써 가꾼 장미꽃을 꺾어다 주려다 가시에 손가락을 찔렸다. 상처를 통해 세균에 감염된 그는 1926년에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의 직접적인 사인은 파상풍이나 패혈증이 아닌 백혈병이었다. 이러한 릴케의 삶을 보면 행복했다기보다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아름다운 서정으로 가득했다. 행복을 바라는 그의 갈망이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릴케의 삶을 보면 그는 결코 넉넉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사랑과 행복을 추구했으며 고독하고 가난한 마음을 승화시키기 위해 매사에 배려하고 자상하게 노력했다. 그래서 어쩌면 릴케는 그 속에서 남들이 느끼지 못했던 감각의 확장과 행복을 느꼈는지 모른다. 행복을 향한 주옥같은 시, 맑고 고귀한 영혼을 갈구한 기도 같은 시를 남긴 릴케의 삶은 고독 속에서 자기를 찾기 위한 끝없는 승화의 길이었는지 모른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고 추구한다. 그러나 그 방법과 대상은 다르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자기 밖에서 찾으려 한다. 그래서 돈과 권력, 향락과 유희에 빠지기도 한다. 고독과 가난을 탓하며 일탈과 분노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점점 더 자신을 불행의 늪으로 이끈다. 마음과 몸이 풍요하면 오만해진다. 고독을 멀리하고 성찰하지 않으며 맑은 영혼의 심미의 세계를 갈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자극적인 향락을 위해 일탈한다. 그러나 행복은 자기 안에 있다. 내면을 성찰하고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며 고독을 승화하여 이겨 내는 데 있다. 그때 영혼은 넓어지고 감각의 숨결은 더욱 살가워 진다. 

 

갑자기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자는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받을 것이다. 온유한 자는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자는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뵐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10절)”

 

그러려면 집착을 버려야 한다. 자신을 편견의 우상이란 울타리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생각과 행동이 확증 편견의 노예가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한 송이의 꽃에 혼이 팔려 그것을 꺾어 가는 데만 집착하면 수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한다. 그 수천 송이의 꽃을 짓밟을 수 있다. 그러면 감각과 영혼의 눈이 멀고 행복은 머나먼 세계로 떠나간다.

 

오로지 감각과 영혼을 확장하여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행복해진다. 다가온 새해는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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