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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일제강점기 천안시 친일부역자는 누구? ①성환면 성봉기 면장

한광수 기자 | 입력 : 2019/09/09 [09:07]

 

▲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부역한 공로가 기록돼 있는 지사사변공적조서에 당시 성봉기 환성(성환)면장의 이름과 공적내용이 기록돼 있다.     © 뉴스파고

 

[뉴스파고=천안/한광수 기자] 광복 70주년을 맞아, 2014년 이미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 조부의 친일부역 행위를 보도한 바 있는 뉴스파고가 천안시 관내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인물과 그 부역내역을 공개한다.

 

본 기사는 지나사변 공적조서를 근거로 작성됐으며, ① 환성면(성환) ②풍세면 ③ 광덕면 ④ 목천면 ⑤ 북면 ⑥ 수신면 ⑦ 갈전면(병천) ⑧ 직산면 ⑨ 성거면 ⑩ 동면 ⑪ 입장면 순으로 보도할 예정이다.

 

당시 천안읍장과 성남면장은 지나사변공적조서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아울러 본 자료의 번역 등에 도움을 준 조한필 기자, 시티저널 이명우 기자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나사변]

지나사변은 1939년 7월 7일을 계기로 벌어진 중국과 일본간의 전면 전쟁을 일본에서 일컫는 단어로, 이는 1937년 7월 7일 북경 교외 노구교에서 일본군이 군사행동을 도발함으로써 시작됐다. 일본정부는 선전포고도 없이 총공격을 개시, 북경·천진에 이어 국민정부의 수도 남경(南京)을 점령하고 30만이 넘는 무고한 시민을 살육했으며(남경대학살사건), 무한(武漢)·광동(廣東)·산서(山西)에 이르는 주요도시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 때 중국은 장개석이 공산당의 항일 민족통일전선 결성 호소를 받아들임으로써 제2차 국공합작을 이루어 일본에 맞섰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이른바 삼광작전(三光作戰, 살광(殺光)·소광(燒光)·창광(傖光))이라는 잔학행위로 1천 2백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을 학살했으며, 왕조명(汪兆銘) 등 친일정치인을 내세워 남경에 괴뢰정부를 수립했다.(네이버 지식백과중·일전쟁 [中日戰爭] (한국근현대사사전, 2005.9.10, 가람기획)

 

지나사변 공적조서에는 이 때 일제에 부역한 공로에 따른 상을 주기 위한 작성한 부역내역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그 첫번째로 ① 환성면(성환) 성봉기 면장의 친일부역 내역이다.

 

부역내역은 크게 군수용물자의 조달공출에 관한 사항, 군사원호에 관한 사항, 여론환기 국방사상보급 및 선전에 관한 사항으로 나눠지며, 성봉기 환성면장의 경우, 여론환기 국방사상보급 및 선전에 관한 공적은 없고 순수용물자와 군사원호에 관한 사항만 기록돼 있다.

 

다음은 지나사변 공적조서를 번역한 내용이다.

 

1.군수용물자의 조달공출에 관한 사항

군수용 물자의 조달공출에 있어서 면민들의 생산분포 현황과 생산능력을 정밀히 조사해 공출기한 및 수송 등 실정에 맞는 조달공출 실시계획을 수립, 부하직원을 편달하여 각 관계기관과 밀접한 연락을 도모, 본 업무의 수행에 대한 면민의 이해지도에 만전을 기한 결과, 좌(아래)과 같은 예정 이상의 수량과 품질양호한 물자를 조달공출했음.

  

군용 말 먹이용 보리 9,758석

군용 멍석 18,055kg

군용 새끼줄(말꼬삐) 2,016관

군용가마니 32,033매

누에고치 100근

양모 1271kg

소 3마리

건초 26,548kg

    

2. 군사원호에 관한 사항

면민에 대해 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상군인에 대해 부조, 응소 군인들에 대한 편의공여 및 그의 유가족들에 대한 후원 위로 등 군사원호 관념의 강화철저를 도모하여, 다음과 같이 휼병위문금품의 모집에 진력했다.

    

위문대(종합위문품)마대 15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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