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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집 ‧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 국가 최대 51년만에 첫 개인별 진실규명

“노태우 정권 때인 1990년까지 프락치 강요 공작…국가 사과와 피해 회복 권고”
"국가 사과하고 배‧보상 특별법 제정해 피해 구제 해야"
신재환 기자 | 입력 : 2022/11/23 [14:52]

▲ 강제징집 ‧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 국가 최대 51년만에 첫 개인별 진실규명(사진=국방부의 ‘소요관련 대학생 특별조치방침’ 문건(1981. 12. 2.).     ©

 

[뉴스파고=신재환 기자] 1970~80년대 학생운동을 벌이던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에 끌고 가고문‧협박‧회유를 통해 전향시킨 뒤 ‘프락치’(정보망원)로 활용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의 실체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공식 확인됐다.

 

그동안은 5공화국 시기인 1980~1984년 강제징집 1152명과 녹화사업 피해자 1192명(강제징집 921명 포함)을 확인하는 데 그쳤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 공작 관련자 2921명 명단이 확인돼 피해자 규모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정근식, 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내리고, 신청인 조종주 등 187명에 대해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로 인정했다.

 

그동안 강제징집 및 프락치 사건의 전체 윤곽을 파악하는 조사는 이뤄졌지만, 국가가 개인별 피해 사례를 대대적으로 조사해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위수령(1971년)과 대통령 긴급조치 9호(1975년), 계엄포고령 10호(1980년) 등은 위헌‧위법 조치로 무효인데 이를 어겼다는 이유로 강제징집했고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국가안전기획부, 경찰에 불법 체포‧감금(형법 124조)한 상태에서 군에 끌고 갔거나, 가혹행위(형법 125조 위반)와 강요(형법 324조)로 휴학계나 입대지원서를 쓰게 한 후 입영시켰고 △군 복무 중 사상 전향과 양심에 반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것 등에 대해 모두 불법으로 확인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2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제45차 위원회를 열어 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23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공식 발표했다.

 

【보안사 개인 존안자료 2,417건 조사, 선도대상자 명단 확인… 강제징집 ‧ 녹화 ‧ 선도공작 관련자 2,921명 최초 확인】

진실화해위원회는 2021년 5월 조사개시 의결 후 1년 6개월 동안 군사안보지원사령부(5공화국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현 국군방첩사령부)가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개인별 ‘존안자료’ 2,417건(11만 3,768쪽)을 비롯해 보안사 선도대상자 명단 등 관련 문건을 확보해 분석하는 등 다각도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 공작 관련자 2,921명 명단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의 강제징집자 명단, 병무청 병적기록표, 각 대학 학적부 등의 자료를 입수해 종합적으로 자료조사에 활용하고 신청인 진술조사를 진행한 진실화해위원회는 2020년 12월 13일부터 2022년 7월 4일까지 진실규명 신청이 접수된 207명에 대해 조사 개시를 의결해 이번에 187명에 대해 1차 진실규명을 했으며, 추가로 20명을 조사해 진실규명할 예정이다.

 

1차 진실규명 신청인 현황을 보면 △강제징집 174명 △녹화‧선도공작 155명으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강제징집과 녹화‧선도공작을 모두 겪은 피해자는 143명에 달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내달 9일 신청 마감 후 강제징집자 전수조사를 포함한 진실규명 과제에 대해 폭넓게 논의할 방침이다.

 

그동안 강제징집‧녹화‧선도 공작은 5차례에 걸쳐 조사가 이뤄져, 1984년 11대 국회에서 ’국회 특별위원회 진상규명‘이 있었지만, 당시 5공 특위 청문회에서 국방부는 강제징집은 사실이 아니며, 녹화사업은 정훈장교 교육이라고 진실을 왜곡했으며, 2004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다시 조사했, ‘강제징집 등 학원통제에 관한 대학 자료조사보고’ 발표를 통해 강제 징집은 대학과 문교부, 보안사, 내무부, 국방부, 병무청 등 각 기관의 개입 및 실행을 일부 규명했다.

 

또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강제징집‧녹화사업사건 보고서’를 통해, 1980년대 대학생 강제징집 및 전향‧프락치 강요 공작의 구조를 밝혀냈다. 5공 정권과 관계기관들이 조직적으로 실행했음을 관련 문서로 확인했으며, 같은 해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는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을 통해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학원 개입과 통제 실태를 규명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진실규명서 새로 드러난 사실…개인별 진실규명 ‧ 1971~1987년 강제징집 확인 ‧ 녹화공작 이후 선도업무 공식 확인】

이번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는 과거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던 여러 사실을 밝혀냈다.

 

우선 위원회 조사는 국가기관에서 강제징집과 녹화‧선도공작 피해사실을 개인별로 상세히 밝혀내고 진실규명 대상자로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과거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사건의 전반적인 실태와 양상을 주로 확인했지만, 특히 이번조사에서는박정희‧전두환정권시기인1971년부터1987년까지 강제징집의 전체적인 실태와 양상을 규명해낸 것이 큰 성과다.

 

특히 프락치 강요 공작의 경우, 전두환 정권이 ‘녹화공작’을 추진하던 보안사 심사과 폐지 후에도 ‘선도업무’라는 명칭으로 1987년까지 공작을 계속했다는 사실이 보안사 문건을 통해 밝혀졌으며, 특히 선도대상자 명단에서 1989년 10월 입대자까지 확인된 데 따라 프락치 강요 공작이 6.10 민주항쟁 후 첫 직선제로 출범한 노태우 정권 시기인 1990년까지 이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박정희‧전두환 시대 20년간 4차례 대규모 강제징집 사실 확인】 

강제징집은 민주적 기반이 취약한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 △1971년 위수령 발동 이후 △1975년 긴급조치 9호 위반관련 △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관련 △5공 정권시기 등 크게 4차례 이뤄졌다.

 

1971년 위수령 발동 이후: 박정희 정권은 학생운동 탄압을 위해 1971년 10월 대학에 ‘위수령’을 내려 학생 1,800여 명을 연행하고, 160여 명을 제적했으며, 그해 10월 26일 제적 학생 30명이 강제징집됐고, 이후 1974년 초까지 다수 학생이 수사기관에 연행된 후 강제입영됐다.

 

1975년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관련: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중이던 학생들을 석방해 현역병으로 강제징집했으며, 대학 측에 학적을 바꿀 것도 강요했는데 ‘학적을 가진 재학생은 징병검사를 연기할 수 있다’는 병역법을 우회해 군에 끌고 가기 위해서였다.

 

1980년 계엄 포고령 위반관련: 전두환 대통령은 1980년 9월 취임 후 다수 학생들을 기소유예나 공소취하, 공소기각 등으로 석방해 군에 징집했으며, 그해 9월 4일 계엄포고령 위반자 등 64명이 집단 징집됐다. 불구속되거나 훈방된 대학생들은 권고휴학, 징계휴학 후 현역병으로 입영했다.

 

5공화국 정권시기: 학생운동의 저항이 거세지자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4월 2일 국방부장관에게 “소요 관련 학생들은 전방부대에 입영 조치토록 하라”고 지시해, 연령·신체 조건에 상관 없이 징병절차를 무시하고,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연행한 후 강제로 징집해무조건 최전방에 배치했다.

 

【강제징집은 국방부, 병무청, 문교부, 법무부, 대학 조직적 합작품…경찰(내무부) ‘행동대’ 역할】

박정희 정권에선 1971년 위수령 발동 이후 대학생들이 집단으로 강제징집을 당했으며, 10월 말까지 신병이 인수된 학생들은 단체입영 이후 개별적으로 붙잡힌 학생들은 개별입영 방식으로 군에 끌려 갔다. 입대 후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의 병적기록표에는 ASP(Anti-goverment Student Power, 반정부학생세력)라는 표식을 붙여 일반 병사들과 따로 분류해 집중 감시했다.

 

5공화국 시기의 강제징집은 국방부-내무부-병무청-법무부-문교부-대학 등이 총동원된 조직적 합작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체포 등을 통해 입영대상자의 신병을 확보했다. 또한 병무청에 군 입영대상자 명단 및 입영예정시기를 통보하는 역할까지 했음, 입영 대상자에게 입영지원서를 받아 부대에 제출하고, 군부대까지 호송하는 것도 경찰의 역할이었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경찰이 대학생 강제징집의 ‘행동대’ 역할을 한 것으로, 현역 입영 대상자가 아닌데 강제징집된 후 프락치 강요를 받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이윤성씨 역시 학생운동을 하다 경찰 사복체포조(백골단)에 잡혀 군에 끌려갔다.

 

1차 진실규명 대상자 중 강제징집 피해자 174명에 대한 유형을 조사한 결과 수사기관 체포 후 입영자(훈방 후 입영 포함)가 107명에 달했고, 이 중 105명(60%)을 경찰이 법령을 위반해 강제징집한 사실도 확인됐다.

 

앞서 국방부는 ‘소요관련 대학생 특별조치 방침’(1981. 12. 1.)을 마련해 1983년 12월까지 병역법에서 정한 ‘징병종결처분’ 없이 강제징집을 지시하는 직권남용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 문건에는 대학 재학생 중 내무부 장관이 결정한 소요관련자 전원을 입영대상으로 하고, 강제징집자 모두를 GOP(일반전초)에 배치하라는 지시가 담겼다.

 

이에 따라 병무청은 내무부로부터 입영대상자 명단을 받는 즉시 국방부에 입영발생 지역, 인원 및 예정시기 등을 보고했고, 문교부는 내무부가 통보한 인원에 대한 학적변동 조치를 한 후 병무청에 군 입영대상자 명단과 입영예정 시기를 통보했다.

 

육군본부가 각 부대에 시달한 ‘소요관련 대학생 특별입영 및 관리지침’(1981.  12.  5.)과 특수학적변동자에 대한 인사관리 세부절차’(1981.  12.  30.) 국방부의 ‘소요관련 대학생 특별조치방침’ 문건(1981. 12. 2.). 등 조직적 공모를 확인할 수 있는 실행 문서들도 확보했다.

 

이와 함께 대검찰청이 ‘학원사범 처리기준’(1983. 4. 8.)을 지방검찰청과 지청에 내려보내는 등 강제징집에 참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기관인 국방부, 병무청, 보안사, 내무부, 문교부, 법무부, 각 학교 등이 조직적으로 헌법과 법률을 어겨가며 불법으로 대학생들을 ‘집단수용’했다”고 결론 내렸다.

 

【보안사, 대학생 녹화(전향) ‧ 프락치 공작 기획부터 실행까지 주도】 

국군보안사령부는 강제징집당해 군대에 끌려온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밀한 계획과 실행프로그램을 가동해 전향시키고 양심에 반하는 프락치활동을 강요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에도 보안사(당시 육군보안사령부)는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을 사찰한 사실이 내부 문건을 통해 확인됐으며, 1971년 위수령 발동 후 강제징집한 대학생들을 ‘ASP’라는 이름을 붙여 동향관찰하고, 전역 후에는 학원분야 요주의 인물로 동향관찰을 하며 ‘전력자원카드’를 만들어 관리했다.

 

보안사 존안자료 ‘문제학생 명단입수 보고’에 따르면 대학에 파견된 보안사 직원들은 제대했거나 제대 예정인 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했으며, 또 다른 존안자료인 ‘전력자원카드’를 보면 거주지 약도와 함께 제대 후 취업한 회사와 부서명까지 담겨 있다.

 

전두환정권 들어 보안사의 강제징집자 관리는 더 심해졌다 .당시 명칭은 ‘녹화공작’ ‘녹화침투공작’으로, 보안사는 1982년 5월 17일부터 1984년 12월 31일까지 ASP, 특수학적 변동자 등의 명칭을 바꿔가며 복무 중은 물론 전역 후에도 군인들을 대상으로 프락치 공작을 해 나갔다. 복무 기록에 별도 표시를 한 후 ‘복무 중 동향관찰’, ‘심사’, ‘순화’, ‘활용’, ‘전역 후 동향관찰’, ‘전역 후 활용’ 등의 계획을 세우고 ‘근원발굴’이라는 명목으로 학원·노동·종교 분야에 ‘침투’시켜 정보수집 활동을 실시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확인한 보안사 녹화공작 문건만 20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보안사의 ‘좌경의식화 불순분자 대상 대공활동지침’(1982. 5. 17.)은 군내 ASP(특수학적변동자)요원 활용 방안을 담은 것으로, 대의식화 공작은 보안유지 목적상 ‘녹화공작’으로 부른다는 내용도 확인된다. 문건에는 △입대 6개월 이내자를 소환 및 협조자로 만들어 불순 서클 자료 파악 및 근원 개발 △6개월 이내 제대 예정자를 협조자로 만들어 제대 후 학원 내 문제 서클 근원 개발 및 침투공작 활용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보안사 대공처는 ‘특수학변자(ASP) 심사 및 순화계획 보고’(1982. 11. 17.) 문건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다. 문건에 따르면 특수학적 변동자는 “대학 재학생 중 내무부 장관이 결정한 소요관련자”라고 명시돼 있다. 보안사는 특수학변자를 A, B, C 3개 등급으로 분류해 관리했다. A등급은 매달, B등급은 분기별, C등급은 필요시 동향을 관찰 보고했다. 단계별 세부 사항으로 1단계 관련자료 수집 및 심사관 교육, 2단계 심사 순화 및 근원 발굴, 3단계 협조자 활용을 실시하라고 쓰여 있다.

 

보안사가 녹화공작을 중단한 뒤에도 선도업무로 프락치 강요 공작을 계속했다는 사실도 여러 문건을 통해 공식 확인됐다. 문건에 따르면 ‘특수학변자 관련업무’를 ‘선도업무’로, ‘특수학변자, 비특변자’를 ‘선도대상자’로, ‘심사순화’를 ‘선도’로, ‘의식화 학생, 좌경의식화 사병’을 ‘관심대상자’로 이름만 바꿔 조사와 동향관찰, 순화, 활용을 이어갔다.

 

선도업무는 운동권 학생 입대 시 대학에서 명단을 받아 선도대상자로 선정, 관리한 후 선도대상자를 A, B, C급으로 분류했다. 특히 전역자는 전역과 동시에 활용 가치 여부를 판단해 등급을 다시 나누고, 현역이나 전역자 중에서 선정 기준에 의해 엄선된 A급은 중점 활용하자는 내용도

보안사 문건에 담겨 있어 선도업무의 치밀한 공작을 확인할 수 있다. 

 

녹화공작과 달리 운영했지만 선도업무 역시 대학이 문교부로 징계결과 보고를 하고, 지원 보안부대에 학적변동자와 징계처리자 명단을 전달했고, 지원 보안부대에선 사령부에 관심 대상자 발굴보고를 하고, 문교부는 사령부에 관심대상 학생 명부와 징계자를 통보하는 등 이른바 ‘발굴’ 체제를 만들어 프락치 공작을 이어갔다.

 

【공포의 프락치 공작 현장, 보안사 분실…“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강제징집자 중 상당수는 보안사 분실로 강제로 끌려가 공포분위기 속에서 조사받고, 사상 전향과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이번 진실규명 대상자 187명의 존안자료를 확인한 결과 드러났다.

 

진실규명 대상자들의 존안자료에는 특수학변자들이 후암동, 진양, 과천 등 보안사 분실로 끌려가 심사-순화-활용의 단계를 거치는 녹화공작 과정이 자세히 문건으로 정리돼 있다.

 

보안사는 특수학변자들의 신병을 확보해 보안사 분실로 강제로 끌고갔다. 조사기간은 3일에서 최대 1개월이며 보통 일주일 가량이었다. 명찰과 계급장 없는 군복을 갈아 입히고, 조사실 내부에 매트리스를 깔아 놓고 잠을 자게하거나 아예 잠을 재우지 않은 경우도 있다. 

 

처음 강요한 진술서에는 출생에서 군복무까지의 과정을 반복해서 쓰게 했다. 특히 대학 서클 가입경위, 시위참여, 의식화 학습과 활동 등 학생운동 전반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고문과 협박, 회유가 이뤄졌다. 당시 보안사에 끌려 갔던 신청인은 “여기 온지 아무도 모른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말에 “공포에 떨었고 전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관할 보안대인 507보안대에서 조사받은 후 어쩔 수 없이 학원 동향파악에 나선 이OO씨는 “진술을 빼먹으면 여지없이 몽둥이가 날라오고, 고문을 했다. 봉에 매달은 상태에서 수건을 얼굴에 덮고 수건에 물을 부었다. 4회 정도 물고문을 받았다”며 “잠을 재우지 않아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일주일가량 붙잡혀 있었다”고 말했다.

 

신청인들은 강제징집과 녹화공작 과정에서 불법체포‧구금, 폭력, 고문으로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했다. 전기고문과 물고문, 통닭구이 고문 등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 수십년이지난 지금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신청인들도 있었다.

 

신청인 황OO씨는 “강제징집 전 대공분실에 끌려 가 조사받을 때 모른다고 할 때마다 벽에 있는 핀침을 빼내 손톱 밑을 찔렀다. 핀침을 0.5cm에서 1cm가량 넣었다가 빼는데 너무 아팠다”며 “피가 계속 나는데 나중에는 감각이 없다. 지금도 트라우마로 손톱과 발톱을 짧게 깎지 못한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아도 진땀 나고, 바늘만 봐도 고통스럽다”고 진술했다.

 

보안부대의 이같은 행위는 형법 제123조 공무원의 타인의 권리행사 방해이자 같은 법 124조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의 불법체포, 불법감금, 같은 법 125조 폭행, 가혹행위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진실화해위원회는 강조했다.

 

【사상과 양심에 반하는 프락치 활동…자신 다니던 학교 동향 파악 등】 

녹화공작 대상자들은 보안사에서 수일간 조사를 받은 후 반공서적과 전두환 찬양서적을 읽고 반성문과 서약서를 작성받도록 강요받았으며, 다음 단계는 반성과 서약을 했으니 증명해 보이라며 소속 대학에 침투공작을 강요받았으며, 대상자들은 즉시 일주일가량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투입돼 양심에 반하는 프락치 활동을 해야만 했다.

 

보안사 조사 후에는 곧바로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투입돼 학교서클동향과 지하서클 연계조직 파악해 보고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친구와 동료, 선후배를 배반하도록 강요하는 반인권적인 일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대상자들은 이 기간 중 거의 매일 학교주변 식당과 주점 등에서 친구와 서클 선후배 등을 만나 각종 동향을 파악했고, 이러한 내용은 개인별 존안자료 중 특수학변자활용결과 보고서에 담겨 있다. 서클의 조직도를 그리고, 핵심인물들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했다.

 

【박래군,유시민,이강택,윤영찬,기동민 등 유명 인사 및 현역의원 포함하는 개인 존안자료 2388명 확보…군생활 사찰부터 보안사 협박, 프락치 공작】 

보안사가 만든 개인별 존안자료의 입대일자별 인원을 살펴보면 1978년 8월부터 1980년 8월까지 6명, 1980년 9월부터 1983년 12월까지 1,331명, 1984년 1월부터 1989년 10월까지 1,004명인 것으로 분석, 80년부터 83년까지의 입대자들을 가장 많이 관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녹화공작의 경우 대체적으로 △의식화 활동 등이 담긴 특변자 카드 △강제징집자의 반성문과 서약서를 비롯해 ‘좌경의식 포지 동기’ 등이 담긴 특수학변자 심사결과보고 △활용계획보고 △접촉결과보고 △(전역자) 활용결과보고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선도업무의 경우 △관리대상자 카드 △선도결과보고 △동향관찰결과보고 등이 담겨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확보한 보안사의 개인별 존안자료 중에는 교사, 검정고시 준비생, 직장인 등 민간인 47명도 포함돼 있다. 또한 유시민, 박래군, 이강택, 오동진 등의 사회 저명인사를 비롯해 윤영찬, 기동민 등 현역의원의 존안자료 및 명단이 확인됐다.

 

개인별 존안자료는 대상자별 서류가 대부분 비슷하나, 보관 여부가 상이하고 특히 실제 활용 및 접촉 여부와 관계없이 활용계획 보고, 활용결과보고, 접촉결과보고를 작성한 다수의 사례를 위원회에서 확인했다.

 

【권고사항: 국가 사과하고 배‧보상 특별법 제정해 피해 구제 해야】 

진실화해위원회는 “강제징집 피해자들은 국방의 의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당한 후 다시 사회와 격리되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국가(국방부, 행정안전부(경찰청), 교육부, 병무청)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각 해당기관은 회복조치 및 재발 방지책으로 병역법 

등을 개정해 권리 보장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진실화해위원회는 “프락치 강요 공작으로 인한 피해자들은 국가의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불법구금, 불법조사, 사찰 강요, 폭력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며 “정권유지 목적으로 ‘전향’을 강요하고, 대좌경화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프락치’ 임무를 부여한 강요 행위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각 해당기관은 이들의 경제적·사회적 피해에 대한 회복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과거 내무부와 내무부 치안본부는 입영대상자를 결정하고, 신병을 확보해 병무청에 명단을 전달하고 부대로 호송 인계하는 등 강제징집에 가장 최전선에 섰던 기관”이라며 “현재의 행정안전부와 행정안전부 경찰국, 경찰청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한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이어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에 대해 정부의 사과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과도, 피해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교육부, 병무청 등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위원회의 조사활동 종료 후에도 장기적으로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의 개인별 피해 사실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조사기구를 설치하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및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피해 회복을 실현해야 한다고 국방부에 권고했으며, 이와 함께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의 피해자들이 현재까지도 신체적·정신적 고통 치유를 위해 ‘의료 접근권’을 강화해 실질적으로 피해가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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