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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권종의 정책칼럼 대마도(對馬島) 그리고 유구국(琉球國) : 일본명 쓰시마 그리고 오키나와

윤권종 논설위원 | 입력 : 2021/10/18 [16:39]

▲ 전) 선문대학교 교수=윤권종     ©뉴스파고

 

[뉴스파고 논설위원, 전 선문대 교수=윤권종] 최근 한일간의 경쟁과 반목은 150년 전의 그때와 다르지 않다.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열강의 각축지가 되어버린 한반도는 태생적 운명을 타고났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독도복속선언(시마네현 고시), 1905년 가쓰라-테프트협약과 을사늑약, 1910년 한일병합, 1945년 센프란시스코 조약 등의 제국주의 침탈행위가 이루어졌다. 이후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전에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미국의 병참기지로서 패전국에서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건국되어 독립국가로 탄생하였다. 그로부터 3일 뒤 8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대마도는 上島及下島(윗섬과 아랫섬)의 二島(두 섬)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 영토인데 삼백년 전 왜(倭)가 불법으로 탈취해 간 것이다.”라는 ‘대마도 한국 영유권’을 주장하자 일본국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내각은 크게 반발하였으며,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9월 9일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여 영유권을 확인했으며 이러한 주장은 60여 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류큐(琉球)는 고려가 여몽연합군(麗蒙聯合軍)에 의해 끝까지 항전하던 삼별초가 강화도와 진도 그리고 제주도를 거쳐 지금의 오키나와 군도(群島)의 우라소에성(浦添城)에 1273년 패퇴한 군인과 유민이 새로운 터전을 세운 곳이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연산군시대 장성사람 홍상직의 서자(庶子) 홍길동(洪吉童)이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원하려 분연히 일어났으나 연산군 6년(1500년) 10월 체포되어 남해 삼천리 밖으로 유배되었으나 탈출하여 류큐국(琉球國)에 무리를 이끌고 정착하여 인근의 지배권을 장악하여 나라를 세웠다. 우리에게는 잊혀지고 지워진 민족의 역사를 허균(許筠)이 홍길동전(洪吉童傳)을 통해 유토피아적 이상(理想)국가 율도국으로 소개하고 있다.

 

원래 오키나와는 류큐(琉球)왕국이라는 독립국가였고 고려와 조선에 조공을 바치던 우리와는 매우 우호적인 국가였다. 주로 중국, 일본열도, 한반도, 동남아를 연결하는 중개무역을 통하여 오랜 시간 동안 해양 무역국가로 성장하였으며, 독립적인 왕조를 이루어 온 국가이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1879년 일본제국의 침공을 받아 완전히 왕조가 멸망하였다. 대마도 문제에서 언급했듯이 1950년 이전 한국정부는 대마도와 류큐가 한국령이므로 국제사회에 오키나와의 독립운동 및 영토반환을 촉구하였다. 제2차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을 치루면서 오키나와는 1975년 까지 일본령이 아닌 미국령으로 대한민국의 대륙붕과 해양영토로 미국정부에 당당하게 주장했던 것이다.

 

근현대에 이르러 일본제국주의는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평화와 균형을 파괴했으며, 21세기에도 패권의 야욕은 그대로이다. 제주도 아래 이어도 해역을 연계하는 동중국해는 동아시아로 향하는 해상로이며, 자원의 보고로서 한·중·일 삼국과 주변 관련국의 미래 운명이 걸린 매우 중요하고 첨예한 해상분쟁지역이다. 우리에게는 제7광구와 태평양해상항로의 중요한 요충지역이다. 제7광구 개발과 대한민국의 태평양 해상로는 일본에 의하여 고립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본의 급격한 경제위기로 초래된 지방재정지원이 축소되면서 오키나와 주민의 분리독립운동이 고조되고 있다. 많은 오키나와人들은 일본인이 아닌 식민지 피지배 국민이라는 강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과거 100여 년 동안 자신들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식민지인으로서 차별과 수탈을 했었던 비극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인한 높은 반일감정이 그 원인이다.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제국주의는 더욱더 극우적 성향으로 치닫고 있다. 오키나와의 인류 유전자 연구(Genome Project)에서 오키나와人의 DNA는 한반도인과의 유사성이 일본인과의 유사성 보다 월등히 높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가 있다. 이는 위의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시대와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재일 조선인들의 거주가 많아 한국과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역사를 재조명하고 영토와 국가자산을 수호하며, 현재를 직시하고 선진강대국으로 가는 대한민국의 미래 전략적 국가운영에 크게 눈을 떠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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