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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권종 칼럼] 민주시민교육은 왜 필요한가?

윤권종 | 입력 : 2022/02/15 [15:56]

 

▲ 전) 선문대학교 교수=윤권종     ©뉴스파고

 

“民主市民敎育은 인식의 테두리 밖의 문제를 인식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정치이야기는 가족 간에도 하는 게 아니다’라고들 한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정치 이야기를 하지 못하면 누가 하는가? 정치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공공의 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주권자인 국민이 적합한 인사를 선출하여 대행하게 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정치는 개인과 집단의 극단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권력화됨으로써 국민이 배제된 채 그들만의 영역으로 소유되어 오고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관심과 참여로 만들어진다. 인간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을 추구하고, 국가의 제도적 확립과 시민성의 확보를 지향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고민을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의 정치교육을 통해 찾고자 한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시민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 정치교육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나와 사회구성원이 연관된 현안의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John Sttuart Mill(1806~1873, 철학자, 경제학자)은 ‘On Liberty: 자유론(1859년)’에서 “민주주의적, 자유 실현의 입장에서 공동체 질서유지를 위해 정치교육이 필요하다.” 라고 정치교육을 정의하고 있다.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은 정치의 프로세스와 의사소통의 과정 속에서 시민의 정치참여를 위한 교육으로 시민의 역량을 기른다. 정치교육은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해야 할 기본적 교육으로, 적극적인 민주주의 참여교육이다. 교육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가치를 익히고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역량을 배워서 실천하기 위함이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최초의 민주공화국 ‘바이마르공화국(1918~1933)’을 탄생시켰다.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에는 민주주의를 이상적으로 담고 있다. 그렇지만 패전 이후 국민을 ‘국가시민’으로 교육할 것인가? ‘세계시민’으로 교육할 것인가? 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히틀러의 나치(1933년~1945년)가 등장하면서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로 치달았고 국민교육은 이데올로기식 교육과 나치의 인종주의, 전쟁 당위성에 대한 획일화, 통일화, 주입식 교육과 세뇌교육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 이후 새로운 국가건설이 필요했던 독일은 미군정에 의한 정치 재교육 정책으로 민주주의 교육을 시작하였다. 또한 미국 투루먼 대통령의 ‘마샬플랜(유럽 부흥정책)’을 통한 민주국가와 경제적, 사회적 재건을 지원하면서 전체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정치 색깔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1960년대 혼란기에 권위주의 타파와 나치 청산을 목적으로 일어난 서독의 학생운동인 ‘독일의 68운동’을 기점으로 1969년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으로 세계시민으로서의 독일 국민은 적대국이었던 동구 공산권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하여 ‘연방정치교육원 동구권 연구소’를 설치(1975년)하여 동유럽의 진정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정치교육은 교육의 정치 도구화를 막으며 자율적 판단으로 정치적 판단능력을 향상하는데 목적이 있다. 또한 정치적인 판단능력과 실행능력을 배양하고, 심화 학습능력을 길러주는 체계적인 교육형태이다. 이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문제해결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다. 1970년대는 보수 Vs 진보의 극렬한 대립으로 갈등 심화되는 시기로 정치교육의 정치적 도구화 논란이 격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감을 인지한 진보와 보수 학자들은 최소한의 인식을 찾기 위한 움직임으로 정치교육 실행 원칙을 세우고자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정치교육원 원장인 지그프리트 쉴레(Siegfred Schiele)는 1976년 11월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의 작은 마을 보이텔스바흐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주제는 ‘정치교육에서의 합의 문제’이다. 학술대회의 특징은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교육자, 정치가, 연구원들을 초대하여 이틀간 작은 세미나로 개최되었다. 참가한 학자들 중에 5명을 좌파, 중도파, 우파로 발제자를 선정하여 ‘초당파적’ , ‘균형적’ 관점에서 좌파인 슈나이더(Herbe Schneider)는 학생 중심의 교육 필요성과 정치교육의 도구화를 지양하자는 의견에 대하여 우파의 공감으로 정치교육의 위대한 『Beutelsbacher Konsens(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이루어 냈다.

 

합의문은 3원칙으로 첫째, 강제성(압도)의 금지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상대를 존중하며, 교화 및 주입식 교육을 금지한 것이다. 둘째, 논쟁성의 유지이다. 토론을 통한 변증법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과정으로 수업에서도 실제와 같은 논쟁적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다. 셋째, 이해관계에 입각한 자기 의견 형성이다. 다양한 의견을 통해 개개인의 의견과 판단력이 학생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를 고려한 실천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협의의 주도자인 지그프리트 쉴레(Siegfred Schiele)는 역사문화학자 Schmid(슈미트)의 저서 ‘Fragen an die Geschichte1~4;역사에 묻다(1975)’ 의 영향을 받아 정치교육에 접목하려고 노력하였다. 정치교육은 사실적 정보만 전달하고 객관적 사실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기르는 수업으로, 스스로 생각하여 “너의 의견을 얘기해! 선생님은 역사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주입식 교육이나 스토리텔링이 아닌 객관적 역사적 사료를 읽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상식을 깨는 수업방식을 적용하고자 하였다. 민주시민의식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이다.

 

따라서 정치교육을 위한 제도가 구축되어야 한다.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 정치, 학자, 학교, 시민사회, 학생이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정치교육은 민주주의 이식과정의 어려움을 체계적으로 극복하여 만들어나가는 방법론적 접근으로, 필자는 민주주의 가치실현의 현실적 대안으로 '정치교육'을 제시하고자 한다. 독일은 자국의 국민을 ‘세계시민으로의 국민'으로 교육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그와 반대의 사례로 ‘국가시민’으로 국민의 교육을 선택한 일본의 사례를 대비하여 볼 수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민주 역량과 선진시민의식의 초(超)글로벌 선두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2022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시대정신은 성숙한 선진민주시민으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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