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파고=한광수 기자] 학생 사이에서 신체적 피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행위의 정도와 발생 경위뿐 아니라 학생의 연령과 관계, 피해학생 보호와 가해학생 선도·교육 필요성까지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1부는 지난 3일 피해학생 측이 제기한 학교폭력 재결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친구를 밀어 다치게 한 초등학생의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학생인 원고와 상대 학생인 소외인은 2023년 당시 같은 초등학교 1학년 3반 학생이었다. 소외인은 같은 해 3월 22일 방과 후 배드민턴 수업시간에 학교 다목적실에서 원고를 단상 아래로 밀어 상해를 입게 했다.
경기도용인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2024년 2월 1일 해당 행위가 신체적 피해를 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보고, 소외인에게 서면사과 조치를 하도록 교육장에게 요청했다. 이에 경기도용인교육지원청교육장은 다음 날인 2월 2일 소외인에게 서면사과 조치를 했다.
그러나 소외인은 교육장을 상대로 서면사과 조치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경기도교육청행정심판위원회는 2024년 6월 19일 해당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서면사과 조치를 취소했다.
피해학생 측은 이 같은 재결에 불복해 소송을 냈지만, 수원고등법원은 2026년 4월 24일 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학교폭력 여부를 단순히 피해 발생 사실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구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협박 등을 통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그러나 어떤 행위가 이 같은 법률상 정의에 문언적으로 들어맞는지만 따져서는 부족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어떤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행위가 위와 같은 학교폭력의 정의에 문언상 부합하는지 여부뿐만 아니라 해당 행위의 경중, 발생경위나 전후 사정,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연령이나 관계 등을 고려한 피해학생의 보호 및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의 필요성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학생들의 발달단계 역시 중요한 판단 요소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초·중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성장하면서 인지·판단능력에 큰 변화를 겪는 만큼, 어느 정도의 발달단계에 이르렀는지를 가해학생 선도·교육의 관점에서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듯한 행위를 모두 학교폭력으로 판단할 경우 학교생활에서 발생하는 학생 사이의 모든 갈등이나 분쟁이 학교폭력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학생 보호나 가해학생 선도·교육 필요성이 거의 없는 사안까지 학교폭력으로 판단하게 되면 해당 학생에게 학교폭력 가해학생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가하고, 인권이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조치가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학교폭력예방법상 가해학생에 대해서는 서면사과와 접촉금지, 학교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또는 심리치료,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대법원은 학교폭력으로 판단될 경우 이 같은 조치를 통해 학생의 학습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제한될 수 있는 만큼 학교폭력 해당 여부도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에서 원심은 소외인이 당시 만 7세에 불과했던 점을 비롯해 사건 발생 경위와 상황, 행위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살폈다.
그 결과 소외인의 행위가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른 조치를 통해 별도로 선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정도에 이르렀거나, 학교폭력으로 규율해야 할 정도의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러한 원심 판단이 학교폭력의 의미와 요건에 관한 법리를 잘못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피해학생 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다만 이번 판결을 두고 어린 학생이 친구를 밀어 다치게 하더라도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이 특정 연령 이하의 학생이나 일정 수준 이하의 신체적 행위를 학교폭력 대상에서 일률적으로 제외한 것은 아니다. 개별 사건마다 행위의 경중과 발생 경위, 피해 정도, 학생의 연령과 관계, 피해학생 보호와 가해학생 선도·교육 필요성을 함께 살펴 학교폭력 해당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앞으로 저학년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우발적 충돌이나 비교적 경미한 신체적 다툼을 학교폭력으로 판단할 때에도 단순한 피해 발생 여부보다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와 학생의 발달단계, 교육적 필요성을 얼마나 충실하게 검토했는지가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뉴스파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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