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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일해저터널’ 국가 존망을 위협하는 어리석은 발상 ‘한일해저터널’

윤권종 | 입력 : 2021/02/04 [14:20]

  

  © 뉴스파고


[前 선문대학교 교수=
윤권종] 2017년 겨울 한해가 끝나갈 무렵 고뇌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듯 오랜 싸움을 마치고 연구소 문을 열고나올 때 나의 손에는 전리품처럼 한권의 보고서가 들려있었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건설사업 효과제고 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일명 ‘한중해저터널’ 제안서이다.

 

연구의 시작과 끝에서 나의 생각은 ‘평화’를 갈구하고 있었다. 伊藤博文(이토 히로부미)는 한반도와 만주를 거쳐 유럽으로 통하는 대륙횡단철도를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위한 침략의 길로 삼았다. 그들은 철도라는 운송수단이 그들 일인(日人)에 의하여 그렇게 우리 민족의 트라우마로 각인되어 있었다. 한중해저터널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동북아 평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자 하는 제안이다. 세계시장의 결절점(結節点)에서 한반도는 선진경제대국으로의 발돋움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제안서이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사족(蛇足)처럼 따라붙는 것이 한일해저터널이었다. 한일과 한중해저터널을 교통로의 연결로 패키지화 하여 동일시하는 사고를 여러 곳에서 접하게 되었다.

 

단언컨대 다르다. 전혀 다르다. 가치와 용도가 다르고 미래의 한반도 운명이 달라진다. 일본 제국주의의 열망은 역사 이래 끝없이 한반도를 발판삼아 대륙에 진출하려는 야욕의 칼을 우리에게 겨누어왔다. 야만과 반인류, 살인과 약탈, 거짓과 비논리로 점철된 섬나라는 그렇게 변하지 않는 일관된 모습을 우리는 체험적으로 인지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의 해저터널은 참으로 넌센스와 같은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해저터널을 연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달려간 곳이 『통영해저터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본 제국주의의 혼네(本音)를 보았다. 이곳은 1932년 준공된 통영반도와 미륵도(彌勒島) 사이의 판데목을 연결하는 461m의 해저터널이다. 터널의 입구에는 ‘龍門達陽: 용문을 지나면 산양(山陽)에 이른다’는 당시 통영군수 山口精(야마구치 아키라)의 멋드러진 석판 명문이 새겨져 있다.

 

山口精(야마구치 아키라)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지금의 통영에 수많은 왜군이 수장되어 이들의 시체 위에 조선인이 다리를 놓아 밟고 지나는 치욕을 볼 수 없다. 차라리 왜군의 시신 밑으로 조선인이 다니게 해야 한다'며, 당시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난공사인 해저터널을 동양 최초로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이 얼마나 집요한 집착이며, 그들의 역사적인 사명인가! 조선인들은 이 굴을 지명을 따서 ‘판데굴’이라 불렀지만, 왜인(倭人)들은 ‘태합굴’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태합(太閤)이 무엇인가? 막부의 쇼군(將軍) 중 유일하게 태합(太閤)이라 칭하는 자는 임진왜란의 전범 豐臣秀吉(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이르는 칭호이며, ‘태합굴’은 ‘豐臣秀吉기념터널’ 아니던가? 참으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 인프라, 국민성 등의 거의 모든 면에서 영국을 벤치마킹한 복제국가(짝퉁국가)에 가깝다. 유라시아대륙에서 이탈되어 대륙의 꿈을 꾸는 두 섬나라... 영국은 1994년 5월 드디어 영국 남부 포크스톤(Forkstone)에서 프랑스 항구도시 칼레(Calais) 사이 도보해협에 총 50.45Km(해저구간 37.9Km)를 연결하는 영불해저터널이 연결되면서, 역사적인 꿈을 이루게 되었다.

 

파리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잠깐 눈 붙이면 런던에 도착하니 그 옛날의 불편함은 과거가 되고 꿈이 현실이 되지 않았는가! EPL을 보고 그날 파리로 돌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물류와 사람을 싣고 내리는, 북적이던 프랑스의 항구도시 칼레는 더 이상 배가 정박하지 않는 불꺼진 유령도시가 되어버렸다. 누구는 꿈을 이루었다지만 누구는 눈물을 흘리며 폐허의 고향을 떠나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영불해저터널이 개통될 때 일본은 ‘우리도 대륙을 지나 마음의 고향인 영국으로 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 고 외쳤을 것이다. ‘그들만 그 예전처럼 말을 잘 들으면 말이다.’ 豐臣秀吉(토요토미 히데요시)의 征明假道, 西鄕隆盛(사이코 다카모리)의 征韓論, 伊藤博文(이토 히로부미)의 東洋平和論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민족의 유전자에 침략에 대한 방어적 DNA를 만들어 준 왜인들은 2021년의 오늘 이 시간에도 제국주의의 꿈에서 깨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110%를 넘는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글로벌 국가이다. 그 중심에 부산, 울산, 경남과 포항으로 이어지는 동남권은 대한민족의 관문이며, 생존의 통로이다.

 

아프다!

 

아직도 민족과 이 나라 국민들의 가슴에는 생채기가 깊은데....

 

누가 그들에 동조하는가?

 

누가 그들을 대변하는가?

 

누가 아직도 그들에게 부역하고 있는가? 

 

칼레의 시민들은 폐허로 변한 고향을 떠나갔지만, 지금 우리의 어리석음은 또 다시 내 아이와 후손에게 과거로 회귀하는 비극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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