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천안 아우내독립만세 기념공원에 제주 4.3학살의 원흉 조병옥 동상...'역사왜곡' 주장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지금이라도 조병옥 동상 제거하고 고증에 맞는 동상 세워야"
한광수 기자 | 입력 : 2019/09/02 [10:38]

 

▲ 천안 아우내독립만세 기념공원에 제주 4.3학살의 원흉 조병옥의 동상이(사진=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병천 아우내장터 '그날의 함성'  (사진=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제공)   © 뉴스파고

 

[뉴스파고=천안/한광수 기자] 천안 아우내독립만세 기념공원에 제주 4.3학살의 원흉으로, 3.1운동 당시에는 미국 유학중에 있었던 조병옥의 동상이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역사왜곡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지만, 천안시는 문제를 제기한 지 3달이 되도록 소위 '핑퐁게임'을 하면서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병천(竝川) 순대로 많이 알려진 아누내장터 시장 입구에는 일본 헌병주재소가 있던 곳에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이 있고, 이 공원에 있는 동상에는 10명의 인물 조각상이 있다. 이 조각 작품은 지난 2009년 10월 공원이 조성되면서 설치된 '그날의 함성'이다. 

 

하지만 그날의 함성에 조각된 10명의 인물 중에 3.1운동과 어울리지 않는 조병옥의 형상도 포함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주경제 2018년 4월3일자 “조병옥,제주 4.3 사건에“친일경찰 등용해 공산당 잡아야”..“20만도민 다 죽여도 좋다” 제하의 가사에 따르면, 제주 4.3 사건을 현장 취재한 당시 제주신보 기자 김기오 씨는 “제주 전 인구가 20만 밖에 안 됐는데 20만명 다 죽여도 좋단 말이야. 소탕하란 말이야 무조건. 제주 놈들 다 죽여도 좋아”라고 말했으며, 조병옥 당시 경무부장은 일제시대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살인적으로 고문한 친일경찰들을 동원해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제주도민들이 학살당했다.

 

만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에 따르면 10명의 형상 중에 조금 이상한 얼굴과 복장을 한 모습의 인물 동상이 있다는 것.

 

10명의 인물 중(위 사진)에 중앙에 횃불을 들고 있는 여성은 1919년 4월 1일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유관순(1902~1920) 열사임을 금방 알 수 있고, 정면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 뒤쪽 끝에 쓰러져 있는 사람과 그를 안고 있는 여성은 김구응 의사와 그의 어머니 최정철 의사를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제공     © 뉴스파고

 

개별 인물을 보면 바로 앞에는 웃통을 벗고 짚신을 신고 아랫도리는 한복인 남성이 있고 옆에는 한복의 여성 시위자가 있다. 하지만 왼쪽 맨 뒤의 나비 넥타이에 서양식 조끼에 겉옷으로 양복까지 입고 거기다 짚신이 아닌 구두까지 신은 모습의 중년으로 보이는 남성의 조각상이 있다. 1919년 시골 장터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양복의 중년 신사가 있으니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대목이다.

 

한국 정치에서 나비 넥타이로 유명한 정치인인 조병옥 박사(1894~1960). 역사적 사실로만 보면 1919년 4월 1일 일어난 아우내 만세운동 당시 조병옥은 25세 청년으로, 미국 유학 중이었으니 전혀 맞지 않는 상황라는 것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장이다. 

 

▲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리는 독립기념관 입구에서 천안시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모습     © 뉴스파고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관계자는 "모습이 중년의 남성으로 보면 아마도 조병옥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조인원을 형상화 한 것 같은데 그래도 나비 넥타이에 양복차림은 너무 한 것 같다."며, "그러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상한 모습의 동상인데 어떻게 이런 어정쩡한 동상이 가능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이 동상의 인물은 제거하고 고증에 맞는 인물상의 동상을 세워야 할 것"이라며, "정치적 영향력과 입김에 따라 독립운동의 역사마저 흐릿해져가는 듯해 아쉽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그날의 함성에 있는 특정 인물(나비넥타이의 구두)이 누구인지에 대한 지난 6월 20일 질의에 천안시는 "특정인은 조인원(조병옥의 부친)이며, 조인원님의 자료가 없어 후손과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받아 박민섭 작가가 제작했다"고 답변했다.

 

▲     © 뉴스파고

 

이에 연구소는, 특정인이 조인원이 아니라 조병옥이라는 증거를, 박민섭 작가의 '학예사로부터 전달받은 사진은 조인원이 아닌 조병옥으로 후일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당시 천안박물관 학예사의 강요에 의해 그대로 제작했다'는 증언과 함께 제시하고 '그날의 함성'을 사료에 맞게 재구성할 것과 함께 김구응 의사 제자리 찾기를 요구했지만, 시에서는  검토하겠다는 답변 후 아직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제공    © 뉴스파고

 

한편 동상의 뒤쪽에 쓰러져 있는 분은 김구응(金九應 1887.7.27.~1919.4.1.) 의사이고 이분을 안고 계신 분은 그의 모친 최정철(崔貞徹 1853.6.26. ~ 1919.4.1.) 의사로 보인다.  1919년 당시 김구응 의사는 32살의 성공회 소속 진명학교 선생이었고, 그의 모친 최정철 의사는 67살로 아우내장터 만세 시위 날인 1919년 4월 1일 함께 순국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모자(母子)지간에 제삿날이 같은 것이다. 

 

김병조(金秉祚)선생의 <한국독립운동사략(韓國獨立運動史略)>에서는 김구응 의사와 관련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천안군 병천시장(川市·아우내장터)에서 의사(義士) 김구응이 남녀 6400명을 소집하여 독립선언을 할 때 일경(일본헌병)이 조선인의 기수(旗手, 행사 때 대열의 앞에 서서 기를 드는 일을 맡은 사람)를 해치고자(刺자)코자했다.  조선인들은 맨손으로 이를 막느라 피가 낭자했다.  [기수는 적수(赤手)로 검도(劍刀)를 집(執)하니 유혈이 임리(淋·뚝뚝 흘러 흥건하게 떨어짐)할 시에] 그러자 일본헌병은 이들의 복부를 칼로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라 김구응이 일본헌병의 잔인무도함을 꾸짖자 돌연 총구를 김구응에게 돌려 그 자리에서 즉사케 했다. 김구응은 머리를 맞아 순국했으나 일본헌병은 사지(四肢)를 칼로 난도질했다. 이때 김구응의 노모(최정철 지사)가 일본헌병을 향해 크게 질책하자 노모마저 찔러 죽였다."  <한국독립운동사략(韓國獨立運動史略)>, (김병조 지음, 1920.6.),

 

"이놈들아! 내 자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내 나라 독립만세를 부른 것도 죄가 되느냐! 이놈들아! 나도 죽여라!"  최정철(崔貞徹) 지사 무덤 묘비석에 적혀 있는 글이다.

 

이 책과 같은 해인 1920년 나온 책으로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1920, 상해, 572쪽)에도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의 '주모자'를 김구응(主謀者 金九應) 의사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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